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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수레무대
Subject      Moliere - Article 1
◎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연극학보 제67합집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973
서옥향,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1. 그의 생애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희극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하였던 모리엘은 그의 원 본명은 장·바티스트·뽀끄랭으로서 '모리엘'은 그의 필명인 동시에 예명이었다. 1662년 1월 15일 파리에서 출생한 그는 부유한 실내장식업자의 장남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온갖 잡상인들이 들끓고 있던 그 속에서도 비교적 안이한 소년시대를 보낼 수 있었으며 동시에 상류가정의 자제들과 함께 고전과 철학, 법률등 당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을수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어릴때에 조부와 함께 극장으로 다닌 것을 동기로 그의 일생은 극장에서 시종했다. 그는 처음 베자르가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저명극단>(L'lllustre Theatre)이라고 하는 한극단의 단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는 그 극단의 단장이 되어 1645년으로부터 10수년간 남불 각지를 순회공연 했으며 1658년에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연애하는 학자]를 써서 극단에 데뷔했다. 그후 국왕 루이 14세의 애호를 받고 다시, 1659년에 「정신없는 여인」이란 희극(1막)으로 명성을 얻게되자 파리에 정주하며 당시의 리슈류가 운영하던 발레·로와이야르, 즉 <왕립궁정극장>을 처음 자신의 극장으로 만들어 갔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극장을 그의 집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코메디·프랑세스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이후 자작의 희극을 이곳에서 연출하였으며 1662년에 자기보다 20세나 아래인 베자르의 누이 아르만드·베자르와 결혼했다. 그렇지만 만년에 그 아내의 부정으로 무척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극단의 유명한 배우로는 자기의 처형인 마드레느와, 라씨느의 연인으로 나중에 부르고니 극단으로 옮겨간 드·빠르크라는 여배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또한 자작극의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연기술은 당시 이태리 희극의 명우였던 티베리오·퓌오레리의 연기술에서 많은 감화를 받고 있었다 한다. 1673년 2월 17일 그는 최후의 희극 「공상환자」에 출연하다 무대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으며 집에 까지 운반되자 곧 숨지고 말았다 한다. 이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서 노력하다 숨져간 작자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극장경영주였던 그는 한 평생을 가정의 불화, 물질상의 궁지, 나아가서는 주위의 멸시와 음모 가운데서도 용맹하게 이들에 도전하고, 혹은 비웃어가며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2. 그의 작품과 당시의 극작 상황

그의 이같은 생활과 인간된 참 모습은 무엇보다도 현존한 그의 작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무려 30여편에 달한 그의 작품들은 실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있다. 1막물의 희극을 비롯한 그의 초기작품들은 대개 이태리 희극이었으나 그것은 다시 프랑스인의 실생활을 묘사 풍자하고 있는 풍속희극 내지는 고도의 성격 희극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우선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면「부인학교」「타르퓨트」「돈·주안」「인간협의」「수전노」「여학사」등인데 이들은 모두 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프랑스 고전주의 희극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면 이들 작품 하나하나를 예로 들면서 작자 모리엘과 불란서 고전극의 참된 모습을 살펴 보기로 하자.「부인학교」(L'Ecole des Femmes)는 「정주학교」에 이어 1662년 작자의 결혼직후에 내어놓은 고전희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12음절로 된 운문의 5막극으로서 「정주학교」와 함께 여성교육에 관한 작자의 진보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것이며 작자가 사회문제에 갚은 관심을 보인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초노의 한 남성이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고 한 소녀를 양육하여 자기본위의 처로 삼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한 그 전말을 그린 작품으로서 풍자 문학의 대표적 시인 즈카론의 소설에서 그 제재를 구했던 것이다. 이 작품도 꼬르네이유의 「르·시드」의 경우와 같이 당시 많은 작가들의 멸시와 공세를 받았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인학교 시비」「베르사이유의 즉흥극」등 그의 시학이라고도 하는 작품들을 집필하여 그 다음해인 1663년에 공개 상연함으로서 이들의 비난을 물리치고 자기의 희극을 변호하는데에 성공하였다. 이들 비난의 요지는 그의 작품이 너무나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는 「부인학교 시비」의 드란드의 대사를 통해서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희극이 이러한 비난을 두려워 한다면 양식과 문법에 알맞은 정규의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해야 하겠지만 희극상의 언어란 그러한 양식과 문법상의 언어 만으로는 부족한것이며 도저히 충분한 것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전극의 3통일의 법칙에 대해서도 그는 벌써 새로운 일가견을 이루고 있다. 그의 논지는 그 법칙이란 어디까지나 희곡이 통일성을 잃고 산만하여 관객의 흥미를 잃어갈때에만 필요한 것이지 이것이 작자에게 짐이 되어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을 해치를 규제가 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법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목적을 의식함이 없이는 정당한 고전극의 법칙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고전극의 준칙이 반드시 지상의 철칙이 아니며 그 준칙들은 이미 그 에게는 하나의 평범한 작법상의 요령으로 착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인학교」라는 희극도 말하자면 이 고전극 정규의 법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작품이며 각자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나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고전극의 준칙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즐기려는 사람을 위하여 쓴 작품이라는 것이며 그것이 연속68회의 상연기록을 수립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그는 그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가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드란드의 대사를 통하여 스스로의 희극을 변호하는 한편 그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보다 역설적으로 이를 대하고 있었으니 법칙을 수행한 희곡이 재미가 없고 법칙을 수행하지 않은 희곡이 보다 재미가 있다면 이 법칙적인 것이 잘못이란 결과가 된다라고 한 것이다. 「부인학교」에 대한 시비는 결국 그의 성공과 굴하지 않은 반감으로 일단락을 지었지만 그는 계속하여 「타르튜프」라는 희극으로 다시 종교계의 반목을 사고 말았다. 이 「타르튜프」라는 작품은 1664년 베르사이유의 궁정극장에서 개막되었으나 선량한 귀족일가를 파멸로 이끌어간 위선적인 종교가의 악덕을 통렬히 풍자한 그 내용 때문에 전 종교계의 반대로 곧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3년후인 1667년에 다시 「사기꾼」이라는 이름으로 제작, 상연되었으나 즉시 상연이 중지되었으며 1669년 이후에 비로소 많은 수정을 거쳐서야 일반에 공개된 작품으로써 그의 풍자극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이어 1665년에 그의 고전주의 희극으로서 가장 파적적인 「돈·주안」이란 작품을 내어 놓았으니 이는 스페인 희극의 모작으로 3통일의 법칙을 준수하지 않음은 물론, 희극적요소와 비극적인 요소를 함께 배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방탕자이며 무신론자인 주인공으로 인하여 종교계의 비난과 방해를 받았으며 그로 해서 자진하여 상연을 중지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인간혐의」란 작품은 12음절의 운문 5막을 희극으로서 고전극의 제 법칙을 성실히 수행한 그의 본질적인 고전주의 희극의 총화라고도 하며 그의 성격희극으로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아르세스트는 너무 정직하고 솔직해서 주위의 조소를 사고 동시에 혐인벽에 걸려 연인과 친구들을 절연하고 사막 가운데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찾고자 한다. 이는 곧 작자 자신의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정직성을 조소하고 애인과 친구들의 배신을 한탄하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무한한 동경과 원망으로 가득찬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주인공 아르세스트의 슬픔은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 조소가 또 슬픔의 대상으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만이 지닐 수 있는 높은 가치이며 이 작품을 「고급희극」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주인공의 자기 반성은 곧 작자의 자조이며 반항이기도 하였던 것이니 이 주인공의 자조와 반항은 이 극 전체를 통해서 그 얼마나 남자다운 일인가를 알 수가 있고 한편 작자 자신의 불행은 또 여기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전노」는 1668년에 나온 5막의 운문극으로 프라우터스의 「아우르라리아」의 모작이나 푸라우터스가 가난한 수전노를 취급했음에 반해 그는 부유한 수전노 알빠공의 돈에 대한 이상할 정동의 집착과 강열한 그 성격을 묘사하여 당시의 부르조아지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그리고 1682년의 「여학사」는 그의 풍자극의 대표작으로서 역시 운문으로 된 5막극이다. 당시 귀족계급 부녀들의 사교적 예의로 시작된 선량한 싸롱 취미가 악용되어 나중에는 일반 2, 3류층의 부녀들 까지도 철학과 과학을 논하는 등 이를테면 부녀들의 현학취미가 도리어 여성고유의 매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그의 주용작품으로는 「스가나레르」「암피트리온」「평민귀족」등의 많은 졸작들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전술한 바와같이 그의 시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인학교시비」에서 작자는 고전극의 법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비해 전기한 스페인극의 모작인 「돈·주안」을 제외한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고전극의 법칙을 보다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은 작자 모리엘이 그 만큼 형식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위대한 고전주의 애호가의 한사람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모리엘의 융통성을 계승한 프랑스의 국민적인 희극작가로는 르나르(1665-1709) 르·싸쥬(1668-1747) 마리오오(1688-1763), 보마르쉐(1732-99)등을 들수가 있는데 이들은 모리엘 이후로 그가 개척한 여러 가지 희극양식들 가운데서 하나씩을 전승한 대표적인 작가들이 었다. 예를들면 르나르는 경쾌한 12음절의 시를 구사하여 그의 대표작 「모든걸 받아들인자」(1708)등의 해학적인 소극을 성공했던 적자이고, 르·싸쥬는 「투르카르」(1709)라는 그의 걸작희극으로 당시 사회상의 하나인 악당만이 출연하는 풍속희극을 시도했던 작가이다. 「마리보오」는 연애희극의 창시자로서 「사랑과 우연의 장난」(1730), 「거짓된 고역」(1737), 「휘가로의 결혼」(1784)을 내었는데 이 두 작품은 18세기 프랑스가 낳은 누가 따를수 없는 역작으로서 고전주의 희극의 마지막 광채를 발산했던 작품들이다.

3. 모리엘 희곡의 특성

모리엘을 알려고 하면 우선 불란서의 고전주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불란서 고전주의 특징은 영문과 독문에 비해서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점은 인가의 연구이다. 다시말해서 인간에 연구라 하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느냐? 사랑이란 무엇이냐? 질투란 무엇이냐? 용감한 사람은 어째서 용감하고 비겁한 사람은 어째서 비겁하느냐? 구두쇠란 어디서 나오느냐? 죽음이란 무엇이냐?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하느냐? 이와같이 인생의 문제를 하나하나 의문점을 만들어서 여기에서 십리를 분석하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도 이것이 곧 불란서의 고전주의 정신이다. 이와 달리하여 독일이나 영국의 고전주의는 인생문제 보다는 좀더 광범이한 자연이나 우주에 대해서 눈을 돌렸다. 허나 불란서의 문학은 인생문제와 심리적 분석을 유달리 강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예로 들어보면 몽테뉴의<수상록>에 <인생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공부는 어떻게 해야한다><외국어는 어너제 배워야 가장 이상적인가> 이러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거의 다 대답해주고 있다. 16세기 와불레를 거쳐서 17세기까지 여러 문학자들이 그려낸 것이 인간에 대한 심리 분석이며 이런한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모리엘의 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리엘의 희곡상 특징이 영국의 세익스피어나 독일의 괴테의 희곡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불란서의 전통적 사고 방식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불란서의 고전주의 특색과 관련하여 모리엘의 직접 활동한 17세기의 상황을 알아 보기로 하자. 한마디로 말해서 모리엘은 불란서의 고전극, 즉 희극을 완성시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 (1660)만 해도 불란서의 연극은 성립되지 않았고 다만 중세기 소극(Sotie)과 바보극(Farce)등 전통적인 작품이 있었으나 16세기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이태리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문화사조가 들어오면서부터 이태리 세력에 눌려서 활발한 운동이 전개되지 않았고 불란서 연극도 자연히 침체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불란서 문학자 사이에 불어정화 운동이 일어 났으며 가장 활발이 움직인 곳은 라뿌데리라는 시인 단체이었다. 이 불란서 문화 정화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로서 불란서의 전통적인 연극 소극이 너무나도 조잡하다 하여서 상연하지 않고, 좀더 진보적이고 우아한 연극, 문학을 찾게 되었다. 물로 여기서 많은 폐단은 생기었다. 바로 모리엘은 이두가지 연극, 불란서의 Farce극과 이태리 희극의 융합을 시키는데 주력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Farce가 어떠한 것인가를 봐야한다. Farce란 불란서의 소극이다. 그런데 왜 불란서에 이태리 희극이 들어왔느냐하면 Farce가 재미는 있으나 너무나도 난폭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봄에 세계 즉, 미래를 향하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문예부흥시대(고대로마희랍)을 돌아가는 것을 갈구하고 바라는 참인데 새로운 사조 이태리 희극이 침투하여 불란서에서는 침투당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태리 희극이라는 것이 어떤것인가? 이태리 희극특징은 세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어느극에서나 똑같은 인물이 나온다. 이것을 모리엘은 불란서의 Farce 에다 삽입 하였다. <스가르데>같은 인물은 <가짜의사>등 여러작품에서 볼 수 있다. 둘째로 즉흥으로 갈등극, 즉 대본이 없이 그대로 줄거리뿐 배우가 즉흥적으로 대사를 한다. 허나 여기서 알아 둘 것은 자동적으로 한다해서 배우 자신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연습과정에서 대사와 비슷한 것은 배우 자신도 모르게 간직된다. 이 즉흥극의 감정으로서는 배우의 독창성이 굉장히 강하게 되고 발랄하고 자발성이 있으며 무대에서도 싱싱한 맛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내용면에서 볼때에는 사랑의 갈등 등을 많이 취급하였으며 테마는 구두쇠로 하는데 그 바탕은 하인이나 종들의 기지로서 연극에 주인 노릇을 한다. 이러한 면은 희극의 특징을 엿 볼 수 있다. 세 번째 군데군데 연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쇼 비슷한 것을 삽입한다. 어떤때에는 곡예사가 나와서 곡예를 하면서 인간을 풍자하기로 하기도 하고 노래도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는 모리엘작품「서민귀족」에서 이러한 요소를 그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문예부흥시대(16-17세기)를 거쳐서 불란서의 문단은 불어정화 운동이 활발이 일어나 그 결과로서 중세의 문학의 저속한 형식같은 것은 전부 빼어버리기도 하고 고대(로마, 희랍)시대로 돌아가 그때에 문학을 순방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태리 문학을 받아 들이는 결과에서 끝났다. 그래서 대강 모리엘이 나오기전 17세기 초에는 많은 작가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희랍시대 연극같은 테마위에서 연극을 하려고 하였지만 극단에서 취급을 하여 주지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극단에서 희랍극 같은 것을 취급하여 주지 않은 이유로서는 이론이라는 것은 희랍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극단에서 취급을 않해 주었다. 이러한 결과 고대 희극을 쓰려고 한 사람들은 대부분 의욕을 잃어서 쓰지 못하고 극단에서는 여전히 소극을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리얼리즘 연극이며 대개는 당시 사회문제 등 몇 개 문제를 대립 시켜서 갈등 문제를 내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풍자 같은 것은 강하지만 환상이 전혀 없는 연극이 유행하였다. 이것을 처음으로 개조하려고 시도 한 사람이 「꼬르네유」(비극작가)이다. 이 꼬르네유는 이태리 희극에서 불란서의 소극을 가미시켜서 현실성에 환상을 넣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려고 한 것이다. 꼬르네유의 처녀작으로는 「메르트」라는 희극을 썼다. 이 작품의 내용은 그 당시 불란서에서 유행하던 전원극 양치기의 <목녀들의 사랑>에서 신화적인 요소, 목가적인 요소를 빼어 버리고 현시로 가져가서 작품을 썼다. 꼬르네유가 이러한 운동은 시도한 동기는 불어정화운동 실패에서 온 공백기 때에 만들어진 싸롱드라마 때문에 소극을 보러 오는 귀족 관객들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소극은 중세기에서부터 서민이 많이 구경하였는데 그 당시 서민은 연극을 구경할 만한 사회적 요소가 되지 않았다. 즉 물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연극 한편 구경하는 값이 서민의 노동 3일 값과 동일 하였으니 그 당시 연극은 완전한 귀족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귀족에게 인기를 잃기 시작하면서 연극의 흥행은 전혀 되지 않아서 연극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꼬르네유가 연극의 개혁을 한 것이다. 허나 꼬르네유는 과도기에서 성공하지 못하여 또 다른 스페인극 같은 것을 받아 을여서 비극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꼬르네유의 작품에 희극은 남아 있으나 그렇게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젠 모리엘로 들어가겠는데 모리엘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가를 알아보자. 모리엘이 처음 희극을 시작할 때 그때사회에서는 배우를 굉장히 천시하는때다. 마치 배우를 창녀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배우가 죽었을 때에는 신부가 와 주지도 않았고 천국에도 가지 못한다고 그 당시 사회에서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모리엘이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에는 부모와 대립이 심하였으며 아버지의 노여움이 대단히 엄하였다. 모리엘이 처음 지방 공연을 할 때에는 소극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 불란서의 소극과 이태리 희극과 가미 시키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처음 지방 공연을 할 때에는 소극을 가지고 간 것이다. 처음 시작한 화르스(소극) 내용은 어쩐다는 것이 남아 있으나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처음 지방 공연으로 가져간 화르스는 주로 줄거리만 가지고 가서 배우가 즉흥적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그 다음으로 모리엘은 화르스를 그만두고 이태리 희극을 그대로 순방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그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경솔자」이다. 이것은 이태리 작가 니콜라 봐르으마가 쓴 「천박한 사나이」를 번안한 공연이였다. 모리엘이 이와같이 지방공연을 하면서 거의 성공하지 못하여서 자기가 만든 극단「데아트르 일리스트」는 망하여 빚더미에 쌓여서 재판까지 받았다. 이때 모리엘의 아버지느 한푼도 도아주지 않아서 「수전노」라는 작품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리하여 많은 공연의 실패로 돌아가 모리엘은 파리로 돌아와서 작품을 썼다. 바로 이때가 모리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또한 이때가 불란서의 소극과 이태리 희극과 융합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가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극을 융합시켜서 모리엘 작품의 방향이 제시 되었다. 그 특징으로 남은 작품이 「남편의 학교」「가짜의 사」가 있다. 특징으로서는 나오는 인물은 한곳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이 작품, 저 작품에 마구 나온다. 그러나 대강 공통된 테마는 그 한 인물에 인가의 저속한 면을 대표하고 있는 점이다. 이젠 모리엘이 연극을 만든 과정을 알아 보기로 하자. 모리엘 작품에서 스잔나라는 인물이 나오기 시작할 때에는 모리엘에게는 성격 희극이라는 면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모리엘이 그려 내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성격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그 사회의 여건 풍속에서 오는 폐단에서 한 인물에게 집중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여기 작품에선 하나의 전용이 나오고 작가는 무자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판단한다. 성격 희극이라는 것은 당시 사회에 나타나는 폐단을 관찰하여 하나의 인간속을 집중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모리엘 작품은 풍속희극이라고 볼 수 있다. 모리엘 작품을 풍속희극 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로서는 한 인물을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엔 불란서(17세기)의 사회에 있어서의 폐단, 즉 사회적을 악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후에 이러한 면이 강조되여서 19세기에 와서는 풍속희극이 발달 되었다. 그 다음으로 테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리엘 작품에서는 「아르빠공」「따르튜프」라는 인간을 그려내서 사회적을 나쁜면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굉장히 공격하여 문제를 제시하여 놓았다.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그 결과에서 오는 후세에 미치는 결과 이러한 면을 100∼200년 앞을 내다보고 예언하는 요소가 있다. 여기서 풍속극 테마극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세레맨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하여 그 당시 사교계에 나쁜면을 주입시켰다. 즉 인간의 허식을 무자비하게 들쳐 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세레맨이라는 한 여자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착실한 「알세르」라는 인물을 대립시켜서 얼마나 허위가 사회적으로 많은 폐단이 오는가? 를 그려 놓았고 알세르처럼 허식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가장 성실한 인간이 허식이 가장 많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회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허식을 미워할수록 그 여자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이것은 모리엘과 부인과의 관계를 나타냄). 이와같이 갈등하는 면도 있지만 결국은 알세트는 짐을 싸가지고 사막으로 간다. 이 작품에서 코메디가 되는 것은 알세르 이며 작품상으로 볼대 상당한 고차원적인 심리 분석극이다. 끝으로 모리엘의 작품은 90%가 남에게 작품을 도작한 것이며 실례로서 「수전노」라는 작품 (1688년 8월 9일 공연)을 보면 「냄비」「다리에워 유령소동」「아름다운 소송녀」에서 하나하나 장점만 가지고서 만든 작품이다.


서옥향,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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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liere - Article 2 수레무대 2003/08/03 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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