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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수레무대
Subject      Moliere - Book 1
◎ 제6장 둘째 세대의 고전주의 대예술가(계속)

몰리에르

근대 희곡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있었던 다른 장르, 즉 희비극, 목가극, 소극 등에 흩어져 있었던 갖가지 요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서서히 구성되었다. 주된 구실을 한 것은 소극이다. 이 소극에서 몰리에르는 영감을 받았다.
몰리에르(Moliere, 1622-1672)는 빠리에서 많은 공부를 한 뒤에, 12년간 시골에서 떠돌이 배우 노릇을 했다. 1659년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이 크게 성공함으로써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았다. 왕의 지원아래 그는 자유롭게 표현할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일생은 투쟁과 격무의 생애였으며 단장이자 배우요 작가였다.
그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우스꽝스럼 프레시외즈들, 1659」, 「아내의 학교,1662」, 「타르튀프,1664-1669」, 「돈 환,1665」, 「인간 혐오자,1666」, 「수전노,1668」, 「부르즈와 귀족,1670」, 「여학자님들, 1672」, 「상상병 환자,1673」

몰리에르는 극의 줄거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단원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그는 오로지 성격모사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는 등장 인물들을 동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그들은 17세기의 독톡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들이 하나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눈에 띄게 하는데도 능한데, 이런 점에서는 그들은 영원한 인간형들이다.
몰리에르는 진실을 그려 낼 줄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희극적인 것을 만들어 낼 줄도 알았다. 그는 둥장 인물들이 처해있는 어떤 상황에서 이따금 발생 할수도 있을 고통스러운 인상을 언제나 피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 속에 조금이라도 희극적인 부분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을 확대해 보인다. 그가 그의 모든 효과를 끌어 내는 것은 현실에서이지, 결코 우스꽝스러운 환상이나 재치 있는 말에서가 아니다. 그의 도덕관은 라블레나 몽테뉴의 그것처럼, 아주 실제적이고 완전히 세속적이다 이 도덕관은 각 개인이 자기의 본성을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각자는 남에 대해서도 똑같은 권리를 존중한다는 조건이 거기에는 따른다.
이 도덕관은 특히 애타주의적인 미덕을 찬양하고 가정생활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몰리에르는 문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대에 맞는 문체이다. 힘차고, 풍성하고 , 말하는 인물에 언제나 꼭 어울리므로 작자의 개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이 보인다.

근대 희극-그 기원

근대 희극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다른 장르, 즉 희비극(喜悲劇), 목가극(牧歌劇), 소극(笑劇)등 속에 흩어져 있었던 갖가지 요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서서히 구성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중의 어떤 것들 - 당시의 풍속이나 환경의 표현- 은 「르시드」와「오라스」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극의 개념을 결정적으로 정착시켰을 때 거기서 해방되어 있었다. 코르네이유 자신도 이러한 요소들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관찰된 작품들 속에서 모아 보려고 했으나 거기에는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하는 효과들이 너무나도 모자랐다. 그렇다면 이 웃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낡은 국민적 장르인 소극(farce)에서 올 것이다. 육담(肉談)이며 몽둥이찜질이며 엉덩이를 걷어차는 등의 장면으로 가득차 있는 소극에서 관중은 언제나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했다. 몰리에르는 그런 것들을 잘 이용할 줄을 알았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관찰자인 동시에 ' 소극 배우'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소극 배우' 라고 까지 말 할수 있을 정도여서 딴데서 얻은 것을 모두 소극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그 속에 녹여 넣고 그것으로 소극을 넓히고 살찌게 했다. 소극은 그에게 줄거리의 교묘한 안배와 재치있는 말의 문학적 멋보다도 먼저 감정의 소박하고 익살스런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희극이 그렇게 까지 국민적인 것이 된 것은 그가 그것을 기성의 전통에 능숙함을 요하는 형식으로서 선배들의 손으로부터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 희극이라는 것을 프랑스의 낡은 소극으로부터 손수 끌어 냈던 것이다. 이 낡은 소극은 엉성하기는 했지만 서민의 모습을 충실히 그려 낸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을 그 서민 정신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완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은 이점 브왈로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바로 그가 희극 작가들 중에서 가장 아카데믹하지 않고 타바랭에 가까운 작가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

몰리에르의 생애, 그 성격

장-밥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 몰리에르는 예명이다.
1622년 빠리에서 당시 타바랭이 그의 익살 광대질로 영원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저 퐁뇌프 다리의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연히 실내 장식업자이자 왕실의 용달상인인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클레르몽 중하교( 훗날의 루이-르-그랑 중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당시의 상류층 자제들의 중학교였다.
이어서 가상디로 부터 개인 교수를 받는 친구 집에서 데카르트와 맞서 쾌락주의를 옹호한 이 유명한 철학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법률공무를 하여 오를레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실 장식업자겸 시종직에 종사 할 것을 서약했다. 정작 그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예비적으로 고전적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그는 법관직에 들어갈 것인가 또는 그의 지위가 확고히 되어 있었던 상업에 투신할 것인가?
그의 친구로 배우였던 베자르 집안사람들(그중에서도 마들레느 베자르)의 영향이 그와는 다른 결정을 가져다 주었는데 거기에는 아마 그의 연극적 소질도 강력히 작용했을지 모른다.어느날 그것은 스물한살 때 였다.
몰리에르는 아버지에게 편지로 왕실 장식업자의 직책에 포기한다는 것을 알리고 자기 몫의 어머니 유산전부를 ' 다음 목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요구했다. 그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들레느 베자르와 몇 명의 친구 및 친척들과 함께 ' 유명극단 ' (L'Illustre The'a^tre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은 매우 어려웠다. 세느 강의 이쪽저쪽에서 '유명극단'은 성공을 쫓아 다녔으나 성공은 좀처럼 오지 않고 빚만 쌓인 끝에 몰리에르는 빚쟁이들에 의해서 투옥되었다 그러나 몰리에르도 마들레느도 절망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부 프랑스의 대로를 돌아다니면서 얄궃은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걷거나 말을 타고, 먼지나 비속에, 짐과 무대 장치를 싣고 가는 달구지를 따라서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떠돌아 다녔다.
그런 뒤에 돈도 벌고 명성도 얻어 가지고, 일행은 마침내 의기양양하게 빠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몰리에르는 왕 앞에서 데뷔했다.(1658년) 그의 나이36세였다.
그의 고전 연구는 그에게 시의 세계을 열어 주었고 그의 빈궁과 방랑의 세월은 사물과 인간에 관한 희귀한 경험과 동시에 직접적인 관찰의 습관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떠한 작가도 이만큼 완전한 훈련을 겪은 사람은 결코 없었다.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의 소극, 1659 」 이 크게 히트를 침으로써 그는 루이 14세의 총애를 얻게 되었다. 이 것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오직 왕의 지지가 있음으로 해서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한 것처럼 자유로이 의사발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공했을 때 마다 적의 수는 더 늘어만 갔다. 그것은 프레시외들 ' 그랑 코메디앵들' [오텔부르고뉴 극장의 배우들을 가리킴], 소귀족들, 질투하는 작가들 따위다. 이러한 작가들이 아무리 중상적이고 모욕적인 ' 비판과 반(反)비판 '을 써내도 몰리에르는 그것을 묵살해 버렸다. 도 진짜이든 가짜이든 독신자들도 그의 적이었는데 이들은 「 타르튀프 」에 화를 내고 「 돈 환 」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와 동시에 몰리에르는 자유 사상가 [ 무신앙자 ]들의 비위에도 거슬렸다.
또 벼락부자가 된 평민, 귀족 사기꾼, 돌팔이 의사등도 그의 적이었다
홀로 모든 사람들에게 맞서 그러나 왕의 호의와 브왈로, 라 퐁테느의 우정에 힘입어 몰리에르는 씩씩하게 싸웠다.
이러한 격렬한 투쟁속에서도 다른 단원들의 배우요 작가였다. 자기 자신의 작품에도 남의 작품에도 발레에도 비극에도 모두 출연했으며 그렇게 분주한 활동속에서도 그 정열과 걱정과 과로의 생활속에서도 13-4년간에 걸쳐서 근 30권의 작품을 썼는데, 그중의 많은 것들이 5막극이고 또 많은 것들이 걸작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마들레느의 딸인지 동생인지 하는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했었는데 이 여자는 그보다 21세나 연하였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결혼으로 말미암아 그는 불안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심히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하였고 몽상에 잠기기를 좋아했지만 감상적이지는 않았다.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를 ' 명상가 '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내부생활과 외부 생활에서 쌓은 숱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인간의 결점과 약점, 악덕에 관해서 폭 넓은 지식을 끌어 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이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실제 있었던 대로 볼 줄을 알도록 하자
그는 인간이고 배우였다. 17세기의 배우들 사이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는데 베자르 집안사람들은 가장 타락한 사람들이 었다.
몰리에르는 그 시대의 가장 방종하고 가장 난잡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속에서도 그의 견실하고 예민한 양식과 관대하고 인간적인 본능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여배우를 빼앗아 가고 자기 작품을 경쟁상대의 극단으로 가져간 라시느의 배신도 아르망드의 경박한 행위도 그 불성실한 친구와 부정한 아내에 대해서 그를 화나게 하지 못했으며 특히 그의 지칠줄 모르는 활동과 갸륵한 정력을 끝까지 유지했다. 다 알고 있듯이 이 끈덕진 투쟁자는 자기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면서도 그리도 남아있는 모든 힘을 모아 무대에 올라가서 연출 중 닥펴온 단말마 ( 斷末魔 )의 처음 경련을 ' 억지 웃음 '으로 관객들에게 감추는 영웅적 행위를 수행했다. 두 사제를 차례차례로 불렀으나 그들은 그의 임종에 입회하기를 거절했다. 그의 유해를 성당 묘지에 묻기 위해서는 그의 미망인이 생 제르맹에 가서 왕앞에 무릎을 끊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고도 그의 매장은 빠리 대주교의 명령으로 밤중에 치러졌다.

몰리에르의 주요 작품의 개요
그의 작품을 대개 소극, 풍속희극, 성격 희극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만큼 부자연스런 것은 없다. 이 세가지의 희극적 요소가 극적 합당성에 따라 갖가지 정도로 섞여 있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의 소극 」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시대의 풍속을 그린 희극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정신의 결점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희극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 혐오자」나 「타르튀프」등과 같이 성격 희극 속에 분류되는 희극도 그것이 일반적인 성격들을 그림에 있어 당시 이 성격들을 싸고 있는 특수한 형태를 통해서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풍속 희극속에 분류뒬 수 있을 것이다.
몰리에르의 주요 희극 작품들을 아래와 같다.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 (Les Pre'cieuses Ridicules) (1659), 「아내의 학교」 ( L' Ecole des Femmes) (1662), 「타르튀프」 (Tartuffe)(1664-1666), 「돈 환」 (Don Juan) (1665),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 (1666) ,「수전노」 (L'Avare) (1668), 「 부르즈와 귀족」 (Bourgeois Gentilhomme) (1670), 「여학자님들」 (Les Femmes savantes) (1672) 「상상병 환자」 ( Le Malade imaginaire) (1673) 이 희곡들이 개요 외에 한편의 소극 「억지의사」 (Le medecin maigre' lui ) (1666) 의 개요를 덧붙여 두자.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 (1659)
두 귀족 라그랑즈와 뒤 크로와지가 고르지뷔스의 딸과 조카딸인 마르들롱과 가토스에게 환심을 사러온다. 그런데 최근에 시골서 온 이두 처너들은 ' 빠리를 오염시킨 저 프레시외한 공기를 담뿍 들이마시고 ' 있었다.
그 여자들은 두 구혼자들을 맞아는 주었으나 그들의 순박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주 멸시하는 태도로 대했으므로 두 사나이는 복수하려고 결심했다.
그들의 주인중 하나인 말 잘하는 마스카리유라는 사나이가 호화로운 옷을 입고 두 프레시외즈들의 집에 나타난다. 그는 그의 능변과 당당한 풍채로 두 처녀를 반하게 한다 거기에 그의 친구인 조들레가 자작의 옷차림을 하고 온다 그러나 그 여자들이 ' 상류 사회 분들이 자기 집에 오시게 된 '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을 때 라 그랑즈와 뒤 크로와지가 불쑥 다시 나타나 자기 하인들을 후려치고 옷을 벗긴다. 두 프레시외즈들은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조그만 즉흥적인 무도회를 열기 위해서 불러온 여자 친구들 앞에서 ' 분해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그 여자들은 고르지뷔스의 꾸지람까지 꾹 참아내야만 한다. 고르지뷔스느 태도는 거칠지만 대단한 양식을 가진 사나이다.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은 본질적으로 소극이다.
즉 종종 익살스런 줄거리에 몽둥이 찜질하는 장면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배우들은 여기서 그들의 예명 (藝名)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라 그랑즈, 뒤 크르와지, 조들레) 혹은 그들이 그역을 맡아 하는 관례적인 인물형의 이름으로(고르지뷔스, 마스카리유) 등장하기도 한다. 이소극의 제재는 아주 새로워 보인다. 즉 작가가 관찰의 소재로서 동시대의 풍속을 직접 다룬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혁신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프레시외한 정신의 과장은 모두 신용을 잃게 되었으며 국왕도 몰리에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아내의 학교」 (1662)
아르놀프는 온갖 부부간의 불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한다.
그는 그러한 불행을 모면하기 위하여 (42세나 되어 가지고) 17세의 젊은 아가씨 아네스와 결혼하려고 생각한다. 이 처녀는 옛날 어느 시골 여자인 어머니 한테서 사온것인데 ' 되도록 바보로 만들려고 ' 외따로 키워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진함이 도리어 그의 뜻을 어기게 된다. 왜냐하면 아네스가 청년 오라스의 끈덕진 구애를 의심도 않고 받아들이게 때문이다. 오라스는 아르놀프가 아네스를 결혼상대로 마음먹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를 통사정 상대로 골라 그 여자와 모든 일이 잘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줄을 알면서도 아르놀프는 ' 순진한 처녀와 얼빠진 총각' 이 자기의 온갖 경계의 허를 찌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가 맛보는 실망은 아네스의 아버지가 때 마침 뜻밖에 아메리카에서 돌아와 딸을 넘겨 받다 청년 오라스에게 준다.

「아내의 학교」 는 몰리에르의 첫 번째의 본격적인 희극이다.
이 작품은 그 문학적 가치며 도덕적 가치에 관해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몰리에르는 「아내의 학교 비판」이라는 조그만 희곡속에서 그러한 논쟁에 대해서 응수했다.
이「비판」에서는 한 조그만 희곡 속에서 그러한 논쟁에 응수했다.
이「비판」에서는 한 후작과 한 현학자(리지다스), 그리고 정숙한 체하는 여자하나 (클리메느) 위라니의 살롱에서 몰리에르의 작품을 공격하는데 이에 대해서 위라니는 사촌누이 엘리즈와 그리고 특히 슈발리에 도랑트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옹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타르튀프」 (1664 - 1669)
오르공에겐 다미스와 마리안느라는 두 아이가 있는데 젊은 엘미르와 재혼했다.
오르공과 그이 어머니 페르넬 부인과 타르튀프라는 인물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모두들 행복했을 것이다. 이 두 모자 타르튀프를 성인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미스, 마리안느, 엘미르, 클레앙트(엘미르의 남동생), 그리고 하녀인 도리느가 보기에는 위선자이고 그의 ' 신성모독적이고 사기꾼같은 찌푸린 상판대기 '는 진실한 독신자의 미덕과는 썩 거리가 멀었다.
그야 어쨌든 오르공은 발레르와 약혼하다시피 되어있는 딸 마리안느를 타르튀프에게 주려고 결심하고 있다.
엘미르는 타르튀프에게 이결혼을 단념시키려고 나섬으로써 타르튀프의 엉큼한과 오르공의 옹고집을 알아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튀프는 단 둘이 마주 대하게 된 것을 이용하여 이 젊은 부인에게 알쏭달쏭한 말로 조심스럽게 넌지시 사랑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다미스가 뜻밖에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아버지에게 타르튀프의 그러한 협잡을 알렸지만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곧이 들지 않을뿐더러 그를 쫓아내고 타르튀프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증여한다. 타르튀프가 또 다시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는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번에는 엘미르가 남편을 옆에 숨겨놓고 교묘하게 꼬리를 치는데에 그만 타르튀프가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숨어 있던 오르공은 격분하여 불쑥 나타나 이 사기꾼을 쫓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타르튀프는 주인같은 말투로 응수한다. 증여받은 이상이 집은 자기 집일뿐만 아니라 오르공의 처지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문서를 전에 자기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자기는 쥐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 우리가 협잡을 미워하시는 임금님 아래 살고 있지 않는다면 ' 오르공은 파멸하고 말았으리라. 타르튀프가 오르공을 체포케 하려고 데리러 간 포리는 이제까지 참을성 있게 타르튀프의 뒤를 밟아 오던 사람이었는데 이 타르튀프야 말로 사직 당국에서 찾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느닷없이 이 악당의 덜미를 잡는다. 왕은 과거의 충성을 생각하여 오르공을 용서한다. 마리안느는 당연히 발레르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몰리에르는 왕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르튀프」의 공연의 권리를 얻기 위해 5년간이나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몰리에르의 적들은 그가 거짓 믿음과 진짜 신앙을 같은 공격속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어느 광신적인 사제는 작자에 대해서 ' 지옥의 불에 앞서 우선 분형 (焚刑) '을 요구했다. 몰리에르는 어느 특정의 협회, 즉' 성체(聖體)협회 의 활동을 공격한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 회원들은 개인의 생활을 정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 환 또는 돌의 잔치,1665」
돈 환은 갑자기 젊은 아내 도냐 엘비르를 버렸다.
그리고 하인 스가나렐을 데리고서 새로운 연애 모험을 찾아 떠났다. 스가나렐은 자기의 주인을 ' 이 세상에 있었던 최대의 악당 '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고약한 대감은 무서운 것 ' 이라고 생각하므로 감히 그에게서 떠나지 못한다. 엘비르의 남자 형제들이 그를 어느 숲속까지 쫓아 갔는데 거기서 그는 도둑놈들의 습격을 받은 그들중의 하나를 살려낸다.
돈환은 비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몇달전에 결투로 죽인 기사의 무덤에 찾아감으로써 용감함을 더 잘 보여준다. 그가 기사의 석상에게 장난으로 저녁밥을 먹으러 오라고 청하자 석상은 고개를 끄덕여 수락한다. 하지만 이 사나이의 냉혹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아무리 간곡하게 타일러도 버릇없이 받아 넘기고 도냐 엘비르가 아무리 애원해도(자기는 이제 수녀가 되려고 하는데 당신도 제발 행실을 고쳐 달라고 한다.) 그는 이 젊은 여인의 검은 옷이 풍겨 주는 새로운 매력에만 마음이 끌릴뿐이다. 그리고 그는 기사의 석상이 나타나자 떨지도 않고 그를 맞아들인다. 게다가 한 술 어 떠서 기사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갈 것을 승낙한다.
그는 완전히 회개한 체하고서 또 다시 아버지를 속이고 이어서 엘비르의 오빠를 속이며 고소해한다. 갖가지 조짐이 그의 주위에 연달아 나타나지만 그의 교만한 마음을 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사의 석상이 그이 앞에 나타나 그가 태연히 석상과 악수하자 석상은 불꽃이 솟아 오르는 구렁속으로 그를 끌고 들어간다.

「돈 환」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있었던 주제를 몰리에르가 다시 다룬 것이다.
그는 돈 환의 무서운 성격을 완화하여 전설적인 유혹자 대신, 베르사유에서 관찰한 것과
같은 그런 무신앙의 바람둥이 대귀족을 그려냈다.
그는 무신앙을 공격하였으나 「타르튀프」의 상연을 지칠줄 모르고 반대하는 신자들의 도당을 가라앉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무신앙자로 하여금 신자들의 위선을 고발케 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었다.

「 인간 혐오자, 1666 」
알세스트는 사교계의 위선을 미워한다. 그는 친구인 필랭트와는 반대로 설령 그것이 사람들을 해치게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솔직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셀리메느라는 젊은과부를 사랑한다. 이 여자가 교태를 부리고 남을 헐뜯기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따른다면 셀리메느의 사촌으로 그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진실한 엘리앙트를 사랑해야만 할것이지만 이성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세시트의 마음을 찢는 고통스런 양자택일 속에서 전개된다. 즉, 셀리메느의 험구와 교태를 너그러이 봐 주느냐(이것은 그가 할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그 여자에게 그것을 비난하느냐( 그렇게 하면 그여자를 잃어 버릴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오롱트, 아카스트, 클리탕드르 등과 같은 젊은 후작들도 셀리메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들은 그 여자를 찬양함으로써 그 여자의 험구하기 좋아하는 성질을 북돋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두를 셀리메느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 여자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따로 보낸 편지를 서로 돌려 보았으므로 그 여자의 표리부동함이 모두의 눈에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모두를 인정없이 쏘아대고 그 여자에게서 떠나 버린다. 단 한 사람만이, 이도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 호되게 얻어맞았지만 ' 남아있다. 그것은 알세스트이다. 그는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자기 입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패하고 자기에 관해 끔직스런 중상을 받게 된 알세스트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견딜 수가 없게 되어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려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셀리메느가 자기의 고독경으로 따라와 주기만 한다면...... 이 고독경이란 말을 듣고 이 젊은 사교계의 여자는 몸서리를 친다. 결혼이라면 좋다. 하지만 그런 귀양살이는 싫다는 것이다. 알세스트는 화가나서 그 여자와 손을 끊고 떠나 버린다. 엘리앙트는 필랭트와 결혼할 것이다.

완전히 내면적인「인간 혐오자」의 줄거리는 대중을 좀 실망시켰다.
반대로 식자들은 처음부터 이 희곡을 ' 흉내내기 어려운 걸작 '이라고 평가했다.
페틀롱과 장자크 루소는 이희곡이 유덕한 인간을 우롱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사실 우리는 알세스트이 생활 원칙을 비웃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호감이 가게 하는 성실성에 대한 그의 정열을 비웃는 것도 아니라 그러한 원칙이 분명히 찬양을 받을 수 없는 사교계에서 그것을 강요하려고 하는 거의 고집불통을 비웃는 것이다.

「억지의사」(1666)
나무꾼 스가네렐의 아내는 난폭한 남편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주인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의를 찾고 있는 제롱트의 두하인에게 자기 남편을 가리켜 그 분의 몽둥이로 후려치지 않으면 자기의 의술을 시인하지 않는 괴상한 의사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하니 과연 썩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억지 의사가 된 스가나렐은 환자인 뤼생드앞에 이끌려 간다. 그 여자는 레앙드르에 대한 연정이 반대에 부딪치자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스가나렐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우스꽝스런 짓을 다해 보이지만 그래도 제롱트와 주위 사람들의 눈을 잘 속여 간다. 그가 약제사로 분장한 레앙드르 뤼생드 앞으로 데리고 오자 처녀는 갑자기 말을 다시 하게 된다
스가나렐은 두 연인들을 도와서 달아나게 해준다. 이 때문에 그는 톡톡이 영금을 볼뻔하여 이제는 다 죽었구나 싶었을 때 레앙드르가 다시 나타난다.
레앙드르는 삼촌이 죽음으로써 자기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것을 방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예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러한 소식만으로 뤼생드와의 결혼에 대해서 제롱트가 네세우고 있었던 모든 반대가 당장 사그라져 버린다.

이 소극은 몰리에르가 중세의 파블리오(fabliau)인 「농사꾼 의사」 (le Vilain Mire)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수전노」 (1668)
돈 많은 수전노 아르파공에게는 두 아이 엘리즈 라는 딸과 클레앙트라는 아들이 있는데 이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엘리즈는 한 청년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그 여자에 접근하기 위해 그 여자의 아버지 집에 발레르라는 이름 아래 집사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한편 클레앙트는 가난한 처녀 마리아느를 사랑하고 있는데 수전노인 아버지는 그가 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하다.
사실 아르파공은 아이들 제작기에 대해서 전혀 딴 계획을 품고있으며, 마리아느를 자기아내로 삼겠다는 의사를 그들에게 표명한다. 매파인 프로지느가 이 결혼에 중매를 맡고 나섰다. 처녀는 아르파공을 아직 만나 본일이 없었고, 그가 자기하고 결혼하고 싶어하는 금발청년의 아버지라는 것도 모르고있다. 아르파공의 괴상망칙한 얼굴을 보고 그 여자는 질겁을 한다. 그러나 클레앙트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힘을 얻는다. 두 젊은이가 이내 친근해 지는것을 보고 아르파공은 의심이 나서, 어찌된 사연인지 당장 알아 보려한다. 그는 자기에 나이를 생각하여 결혼을 단념한 체하면서, 클레앙트에게 마리아느와 결혼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다. 아들은 경솔하게도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 아버지에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마리아느를 끝까지 양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갑자기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져서 수전노의 분노가 딴 데로 쏠린다
만 프랑을 넣어서 뜰에 파묻어 두었던 상자 하나를 도둑 맞은 것이다!! 훔쳐간 사람은 아르파공에게 쫓겨난 클레앙뜨의 하인 플레슈이다. 그러나 쟈크영감의 밀고로 혐의가 발레르에게 씌워진다. 자크 영감은 집안에 온갖 일을 다하는 하인인데, 집사에게 매를 맞은일이 있어 그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다. 누명을 벗기 위해, 발레르는 할수없이 자기에 진짜 이름을 밝힌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 마리아느는 그가 자기의 오빠임을 알아보고, 앙셀므 대감(아르파공이 엘리즈를 아내로 주려고 하고 있었던 50세의 사나이)은 그들 두 젊은이를 얼싸 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들에 아버지인 것이다.
옛날, 기구망칙한 일을 격은 끝에, 이 가족들은 난파를 당하여 뿔뿔이흩어졌던 것이다. ---- 이때 클레앙뜨가 나타나 아버지에게 흥정을 하기 시작한한다. 아르파공이 자기에게 마리아느를 준다면 그 돈 상자를 돌려 주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르파공은 모든 것에 동의한다. 심지어 엘리즈를 발레르에게 주는 것 까자도. 다만 자기는 두 쌍의 결혼에 돈 한 푼 안 쓸 것이며 혼례식때 자기가 입을 옷을 한 벌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수전노」는 어떤 점에서 플라우투스에 「아울루라리아」[프랑스 어 Aulu-laire ou la Marmite, 즉 「남비의 희극」]의 모방이다. 그러나 플라우투스는 어쩌다가 보물을 발견한 사나이가 그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그렸다는데, 몰리에르는 타고난 구두쇠 근성을 그리고 있다.

「부르조아 귀족」(1670) ---- 나사 장수로 부자가 된 쥬르댕 씨는 사교계에 나가기를 꿈꾼다. 그가 예절을 배우기 위해서 고용한 선생들은 온갖 방법으로 그를 농락하고, 도랑트라는 이름에 몰락한 백작은 그로부터 마구 돈을 짜낸다. 도랑트는 쥬르댕 씨가 반한 도리멘느 후작 부인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사기꾼 귀족은 이 평민의 돈으로 자기 실속만 차리고 있는 것이다. 쥬르댕 부인은 남편의 미친 지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도랑트에 대해서 전혀 호감을 갖지 않고 있다. 하녀인 니콜의 도움을 받아, 그 여자는 도랑트에 술책을 감시하고 그의 소행을 얀정 없이 꾸짖고, 자기 자신의 집에서 도리멘느가 자기 남편과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붙들어, 역시 호되게 야단 친다.
쥬르댕씨는 또 하나의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딸 뤼씰을 적어도 어느 후작에게 시집보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뤼씰은 클레앙뜨라는 청년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는 귀족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슨 계략을 쓰지 않고서는 이 결혼을 성사시킬수 없다. 클레앙트의 하인인 꾀바른 꼬비엘이 계책 하나를 생각해 낸다. 그는 터키 사람으로 변장하여 쥬르댕씨에게, 빠리를 지나가던 터키 황태자가 그의 딸에 반하여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이 순진한 평민은 마마무쉬 라는 벼슬을 받고나서 기꺼이 뤼씰을 황태자 전하에게 바치는데, 이 전하란 사실은 변장한 클레앙트 이다.

「부르조아 귀족」은 국왕의 소망에 따라 씌어 졌다. 왕은 몰리에르에게 터키 풍속을 섞어 넣은 우스꽝스러운 막간극 하나를 쓰도록 분부했다. 그 전해 터키 사절단이 궁정 인들 무척 웃겨 주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가장무도회에 성격희극과 풍속희극을 섞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벼락부자의 타입과 협작 귀족의 타입을 그려 냈다. 이러한 인물형은 18세기에 희곡속에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여학자님들」(1672) ----- 착한 브루조아인 크리잘의 집에서는 여자들이 모두 학문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아내 필라맹트도, 누이동생 벨리즈도, 딸 아르망드도. 오직 둘째딸 앙리에뜨만이 자기를 사랑해주는 클리탕드르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것밖에는 딴 야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클리탕드르는 필라맹드르의 마음에 드는 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필라맹트의 마음에 드는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느 여자가 ' 모든 것에 지식을 갖는 ' 데는 찬성하지만 현학 취미는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집에서 신처럼 여기고 있는 현학자 트리소탱에 대해서는 경멸밖에 품지 않고 있다. 그르므로 크리잘은 정말 자기 마음에 맞는 이 사위를 독재적인 아내 필라맹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그런데 ' 그 여자는 성이 나면 무서운 사람" 이어서 그 여자 앞에서 그는 굴복하거나 꿀먹은 벙어리가 될 줄 밖에 모른다 필라맹트가 앙리에트를 트리소탱에게 주기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 마음 약한 크리잘은 동생인 앙리스트의 지지와 앙리에트에 대한 애정에 힘을 얻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자기의 뜻대로 강행하겠다고 늘 맹세하고 있다. 그러한 순간이 드디어 왔다. 필라맹트는 공증인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트리소탱의 이름을 받아쓰게 한다 크리잘은 클리탕드르의 이름을 적게한다. '남편이 둘이라! '하고 궁증인은 외친다.
'관습상 너무 많은 걸.....' 하마터면 가압적인 필라맹트의 뜻대로 될 뻔했을 때 마침 아리스트가 아쁜 소식을 갖고 온다 소송에 지고 파산했기 때문에 크리잘은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트리소탱은 흉악한 심보를 드러내고 물러간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나쁜소식을 아리스트의계략에 불과했으며 클리탕드르와 앙리에트이 결혼식은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거행된다.

「여학자님들」은 13년 전에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이었던 여자들에게 새로운 조롱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문학에서 철학과 과학쪽으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도 의사이고 아르강의 주치의 퓌르공씨의 조카이니 그렇게 하면 그는 집안에 '자기에게 필요한 온갖 약의 샘'을 갖게 되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기의 아내이자 앙젤리크의 계모인 앙큼한 벨리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바로 이딸의 상속권을 박탈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앙젤리크에게는 두 보호자가 있다. 삼폰 베랄드와 특히 괄괄하고 입이 사나운 하녀 트와네트가 그들이다 그들은 먼저 학교를 갓 나온 얼간이로서 현학적이고도 괴상망측한 토마 디아프와튀스와의 결혼을 깨고 앙젤리크가 사랑하는 클레앙트와의 결합을 도우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이엉뚱한 혼인의 중매장이인 퓌르공씨와 아르강의 사이를 갈라 놓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 지나가던 의사'로 가장한 트와네트는 아르강에게 퓌르공씨는 엉터리 의사하고 말하고 자기가 책임지고 그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장담한다. 그런뒤 그들은 아르강에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은 오직 돈 때문이라는 것을 거뜬히 증명한다.
즉 그가 잠시 죽은체 하고서 그의 '과부'가 얼마나 기쁜 듯이 그의 재산 증서를 그에게서 뺏아 가려고 드는가를 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똑같은 시험을 앙젤리크와 클레앙트에게도 해보니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한다.
아르강은 감격하여 그들의 결혼에 동의한다. 다만 클레앙트가 의사가 된다는 조건부로 '하지만 형님'하고 베랄드가 그에게 말한다. ' 그렇다면 형님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의사의 옷과 모자만 받으면 알아야 할 것은 뭐든지 대번에 아시게 될테니까요' 그리하여 ' 상상병 환자의 의삭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여흥이 시작된다.

이 유쾌한 희극에는 어딘지 씁쓸한 맛이 섞여 있다 몰리에르는 기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면서, 자기의 병을 고쳐주지 못한 의사들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몰리에르 극에 있어서의 줄거리
- 그 종속적 역할

몰리에르가 줄거리를 세워 나갈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다 반대로 그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아주 뜻밖인 사건들 배합함으로써 우리의 호기심에 쉼쉴 겨를을 주지 않을 줄을( 그가 사귄 많은 이탈리아의 작가들처럼 ) 비상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재미있는 배합을 즐겨 하고 있는 것은 특히 소극에서이다. 그의 본격적인 희극에 있어서는 그가 웃음의 원천도 진실의 환각도 줄거리 속에 넣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극의 줄거리를 어디서고 고대 희극이나 이탈리아 희극의 진부한 낡은 테마에서 빌어 온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줄거리는 모든 것이 성격속에 포함될 희극이 그 안에에서 전개될 틀에 불과하니까 그는 심지어 줄거리를 부숴 버리고 인물에게 자기 표현을 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엄밀히 필요 불가결한 최소한도로 줄거리를 줄이는 경우조차도 있다. 「인간혐오자」는 거의 줄거리가 없는 생활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되어 버린 그런 희곡의 한 예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필랭트에 대한 알세스트의 우정, 오롱트와 그의 분쟁, 셀리메느에 대한 그의 사랑, 이러한 숱한 사건들은 서로간에 거의 관련이 없고 알세스트의 인간 혐오벽을 갖가지 각도에서 밝혀 주는 것밖에는 다른 존재이유가 없다.
거기에는 결말도 없다. 알세스트는 여전히 셀리메느 앞에 있다 그는 마음만 내킨다면 다음 날 그 여자의 집에 돌아올수 있다. 이 나약한 애인이 토라진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또 희곡은 끝맷을 때도 몰리에르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타르튀프」와 「돈 환」은 두 개의 기적으로 끝나고 있다.
이 두 악당을 끝 장내기 위해서는


후자에세는 하느님이 전자에서는 임금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학자님들」을 끝내 주는 것은 한 통의 위조 편지이고 「수전노」를 끝내 주는 것은 연달아 밝혀지는 친족 관계이다. 이러한 결말은 그것이 성격이나 정열과 직접 모순되어 더욱더 의논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드라마의 자연스런 발전과 논리적인 효과를 대번에 부숴버린다.
그 때문에 이러한 결말은 전혀 상투적이지만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다소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서 어떻게 저 이기주의 투쟁을 즐겁게 끝낼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투쟁은 등장 인물의 근본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제 5 막의 짧은 시간안에서도 진정으로 사라질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어쩌면 몰리에르도 그러한 결말을 보다 덜 갑작스럽게 만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 결말의 준비에 장소와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인데 몰리에르는 이러한 장소와 시간을 성격의 전개에 바치기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성격묘사
- 몰리에르 희극의 본래와 목적

성격묘사, 이것이야 말고 몰리에르의 본래의 목적이다. 그것은 그의 현실주의의 원리 그 자체이며 이 현실주의의 무엇보다도 먼저 심리적 현실주의이다. 인간 영혼의 뒷면, 동기, 원동력,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라나 그는 너무나도 강렬한 삶의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18세기의 작가들이 한 것과 같은 그런 순수한 추상(위선자 그 자체, 현학자 그자체, 등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가 창조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살아 있는 인간의 평범한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예컨대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은 프레시외즈들 살롱이고 「여학자님들」은 학자들의 살롱이고, 「타르튀프」는 거짓 독신자에 의한 부르즈와 가정의 해체이고 「돈 환」은 당시 귀족들에게서 그렇게도 자주 볼수 있었던 무신앙에 대한 풍자이고, 등등....... 또 그의 인물들은 복잡하다. 인간혐오자가 아양떠는 여자를 사랑하고 위선자 타르튀프가 욕망의 격렬함으로 인해 정체가 드러나고 수전노가 사랑에 빠지고 돈 환이 하도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까지나 신비롭고 사람에게 불안을 준다.
이러한 복잡성이 등장 인물들 하나 하나에 강렬한 개인적 삶을 부여한다.
그러나 여기에 천재적 솜씨가 있거니와 그렇게도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는 이 17세기의 특이한 인물들은 동시에 영원한 인간형이다. 이들 부르즈와나 귀족들은 허영심 많고 교만하고, 어리석고, 노련하고, 악랄하고, 이기주의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마음이 곧고 생각이 견실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희곡은 사라진 사회의 환기라고도 생각할수 있고 또 때로는 시대도 역사적 존재도 없는 성격 묘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단 하나의 희곡만이 예외가 될지 모른다. 그것은 「수전노」인데 아르파공은 정녕 수전노 그 자체이며 17세기의 고리 대금업자는 세밀하게 조사해 본 뒤에야 비로서 나타난다.
몰리에르는 악덕이 그 인간 속에서 끼치는 침해를 연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그 인간의 밖에서도 그 악덕에서 기인하는 자연적인 감정의 변질 또는 파괴를 관찰한다. 악덕에 의한 악덕의 발생은「수전노」속에서 뚜렷이 보인다. 아르파공의 인색함은 그 자신 속에서 명예심, 위엄에 대한 배려, 의무의 관념, 그리고 아버지의 애정까지도 죽이지만 그의 아이들속에서도 그것이 존경과 자식의 애정을 죽인다. 가정은 파괴된다 이 아버지와 이 아이들은 서로 남과 같이, 원수처럼, 그것도 서로 존경하지 않는 원수처럼 맞서 있다
이렇게 최초의 악의 결과를 따라가다 보면 희극은 이내 우울해질지 모른다
몰리에르는 항상 인물의 성격 위에 충분한 조명을 비추도록 배려한다.
이 성격이란 재미있는 것이니가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결점에서도 얼마나 중대한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언제나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희극에 더할 수 없는 넓은 폭과 큰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몰리에르가 자연을 왜곡하고 성격을 과장했다고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다.(브왈로, 라 브뤼에르, 페늘롱) 몰리에르가 지배적인 결점을 강력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것을 단순화 하고
확대해야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돈은 아르파공의 유일한 목적이고 주르댕 씨의 순진하나 허영심은 한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화나 확대는 결코 변형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켜 주는 것이며 진실을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서나 희극미를 잘 드러내 주기 위해서 연극에 필요한 것이다. 라 부뤼에르의 오뉘프르는 타르튀프보다도 더 면밀하게 연구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복합적인 인물은 거의 살아 있지 않은데 타르튀프는 살아 있다.

몰리에르 극의 인물
- 그 다양성

몰리에르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17세기 프랑스의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을 제공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색채와 생명이 넘쳐 흐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도 역시 거기에 그려져 있는 풍속은 영원한 커다란 정열의 일시적 형태에 불과한 것 같이 보인다.
그리하여 사회적 풍자는 항상 도덕적 풍자와 겹쳐져 있으며 그 거꾸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골 사람은 잠간씩 밖에 보이지 않는데 순박하고도 교활하여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순진함으로 가리고 있고 시골여자는 아양스럽고 허영심 많고 그 때문에 쉽사리 농락에 넘어간다. 스가나렐은 주정뱅이이고, 난폭하고, 욕심 많은 시골 사람이다
시골뜨기나 가마꾼의 몇몇 실루엣을 통하여 잠깐씩 볼 수 있다. 협잡꾼, 뚜장이 계집, 검객들의 수상쩍은 세계도 짐작이 간다.
뻔뻔스럽고 교활한 하인들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나오고 그런 세계와 결부되어 있다 정직한 서민, 태도는 거칠고 말씨는 상스러워도, 아주 성실하고 착한 서민은 하녀들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다.
부르즈와는 그 종류가 그러하듯이 수도 많고 다양하다. 상인인 디망슈[돈 환에 의해 내쫓긴 상인]는 귀족들 덕택으로 빚쟁이가 되지만 돈은 돌려 받지 못하고 놀림감만 된다.
주르댕 부인은 그 분별력과 격해지기 쉬운 성미와 시끄러운 잔소리와 끝없는 선량함에 의해서 서민에 아주 가깝다. 얼간이 부르즈와인 크리잘은 둔하고 물질적이고 먹을 것에 만 마음을 쓰고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위엄도 없고 권위도 없다.
주르댕과 아르놀프는 귀족 노릇을 하고 소유지의 이름으로 성을 삼고 많은 돈을 써가면서 귀족과 사귀는 허영심 많은 부르즈와다.
마들롱, 카토스, 아르망드, 팔라맹트 등은 부르즈와 집안의 여자인 주제에 프레시외즈인 체하고 재치를 부린다. 오르공과 그가족은 상류 부르즈와이거나 법관 귀족으로서, 세련되고, 유복한, 벌써 사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시골 귀족을 보자
「조르즈 당댕」(George Dandin)에 등장하는 소탕빌부부는 성씨(姓氏)와 가문을 코에 걸고 뻣뻣하고 점잖 빼고 지체 없는 자라면 누구 앞에서나 교만하게 군다.
시골 멋쟁이인 그들의 딸 앙젤리크는 악녀에 불과하다. 데스카르바냐스 후작부인은 고상한 체하고 궁정과 빠리사람들을 괴상망측하게 흉내낸다. 끝으로 빠리와 궁정의 귀족을 보면 몰락한 귀족 도랑트는 사기꾼이 우스꽝스런 미남 멋쟁이들이며 한량들도 있는가 하면 오롱트는 대귀족인 주제에 시를 짓고 아르시노에는 엉큼한 숙녀이고 셀리메느는 매정하고도 매혹적인 멋쟁이다.
클리탕드르, 알세스트, 필랭트, 엘리아트등은 참으로 교양있는 신사 숙녀들이다. 금융업자는 잠깐 나타날 뿐이다. 그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두가지 인물형, 사제와 국왕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몰리에르의 희극미

몰리에르는 진실을 그려 내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희극적인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관찰이 너무 신랄해지면, 그래도 웃음을 자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한 희극적 요소를 섞거나 관찰된 결점이 다소라도 희극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으면 그것이 누구의 눈에도 뜨이도록 그것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두 가지 의도가 그의 희극 도처에서 눈에 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언제나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탐구하는 결점이며 악덕이며 정열은 개인을 괴롭히고 가정을 파괴한다.
아르놀프나 알세스트는 몹시 불행하다. 트리소탱, 벨리느, 타르튀프등의 위선은 집안의 평화와 행운을 깨뜨린다. 같은 인물형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발자크는 사람을 떨게 할 것이다 몰리에르는 웃긴다 영혼과 인생의 이 서글픈 뒷면의 어디가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것은 그는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 돈 환」, 「인간 혐오자」, 「타르튀프」, 「상상병 환자」등에 있어 희극은 한때 이 장르의 한계에 부딪치고 한계를 뛰어넘기까지 한다. 거기에서 부드러운 또는 고통스러운 감동이 생겨난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이내 그러한 감동을 억누르고 희극 속으로 돌아간다
그가 어떠한 수법으로 항상 희극적인 인상을 돋보이게 하는지 연구해 볼 만하다. 스가나렐은 「돈 환」의 침울한 삽화(揷話)를 즐겁게 해 주는 구실을 하고 뒤 브와는「인간 혐오자」제 4막의 비통한 고민을 지워 주고, 도리느는 「타르튀프」의 한심스런 장면에 유쾌한 기분을 던져주고 있으며 아르강은 우리가 벨리느에 대해서 느끼는 반감을 누그러뜨리거나 앙젤리크에 대해서 측은한 동정을 느끼게 해준다.
현실이 덜 우스우면 그럴수록 더 몰리에르는 그것을 소극으로서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몰리에르의 희극미가 씁쓸한 경험의 바탕 위에서 얻어지고 그 의에 달라붙은 희극미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몰리에르의 승리는 도리어 각각의 인간형 속에 각각의 상황속에 우스꽝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표착하여 그것을 돋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그의 유쾌함은 솔직하고 견실하고 진실하다. 몰리에르 극의 익살의 성질에 관해서는 아무리 역설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것은 결코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결코 재담도 아니다. 마리보나 보마르셰는 몰리에르보다도 훨씬 더 재치가 있다. 몰리에르의 익살은 그 성질은 다르지만 코르네유의 숭고함과 비슷하다. 그것은 단번에 그 밑바닥에서 드러나는 성격으로부터 강력하게 솟아오르는 것이다.
(오르공의 ' 가련한 놈 같으니! ' 등등......) 몰리에르는「아내의 학교」속의 한 마디의 말을 변명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이 때 그는 그의 익살을 훌륭히 정의한 셈이다.
'작자는 이 말을 그 자체 멋진 말이라고 해서 쓴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람(즉 등장인물)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희극적인 어조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 있는 저 말의 반복이며 중단이며 평행적인 발전은 잘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회화, 진행의 재생에 불과한 것이다 일상적인 회화에 있어서는 두 고집쟁이가 맞서서 제각기 자기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몰리에르의 익살은 결코 우스꽝스런 익살 속에 사라져 버리지 않고 언제나 현실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다.
희극미 없는 진실은 없지만 진실이 없는 희극미도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몰리에르의 공식 그 자체인 것이다.

몰리에르의 도덕

이러한 사회적 또는 도덕적 풍자로부터 일관성 있는 도덕을 끌어 낼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도덕이요 몰리에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도덕이다. 그는 「타르튀프」속에서, 참다운 신앙을 정의해 보려고 람으로써 그것을 증명했다.(제1막 제5장)
그는 또 자연에의 저항, 자기의 포기, 이상을 향한 고통스런 노력 등과 같은 기독교도덕의 근본적 형식을 자기 작품에서 배제함으로써 그것을 더 잘 증명하고 있다.
그는 본능의 정당함을 믿는다. 라블레와 몽테뉴의 상속자인 그는 자연은 선할 뿐만 아니라 전능하다고 생각한다 본능을 따르지 않으면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본능과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본능이 언제나 이기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본능과 싸움으로써 불행해지고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몰리에르는 사랑의 자연 법칙을 따르는 젊은이들의 편을 들고 그들을 방해하는 아버지들과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능에도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능은 원래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것이다 결국, 인색은 아르파공의 본능이고 위선은 타르튀프의 본능이다 라블레타 몽테뉴와같이 몰리에르도 본능을 이성에 의해서 통제한다.
이성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타산없는 이기주의를 시인하고 아르파공이나 타르튀프의 타산적인 이기주의를 비난한다. 이성은 각자가 자기와 비슷한 남의 권리도 존종한다는 조건 아래 자기의 천성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권리를 모든 개인에게 부여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을 말살할 정도로까지 권리를 모든 개인에게 부여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을 말살할 정도로까지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것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점에 아르놀프의 잘못이 있다. 이 사나이는 전혀 이기적인 소견에서 아네스를 무지몽매하게 키우고 모든 자연적인 쾌락을 박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네스의 본성이 이에 반발하여 이 어리석은 소녀는 본능에 따라서 자기의 행복을 향해 힘차게 똑바로 달려간다. 그리고 몰리에르는 그것을 시인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아이들이 자기힘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을 자기 자신의 생각과 욕구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이런 아버지들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아버지의 권위는17세기에 있어서는 지극히 엄격했다.
몰리에르는 그것을 비웃고 부순다. 그는 애정과 관용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권위를 꿈꾸고 이 권위가 자애로움을 가지고 아이를 인도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완전히 꽃필 수 있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본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도덕은 해방된 본능들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을 자아낼 우려가 있다. 이러한 충돌을 회피 또는 완화하기 위해서 몰리에르는 동정, 친절, 관용등과 같은 사회적 미덕을 찬양한다.
그가 칭찬하는 미덕은 오직 그것뿐이라고 까지도 할 수 있다. 개인은 그의 행위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몰리에르가 그 결과에는 관계없이 그 자체를 위해서 실행할 것을 권하는 개인적 미덕 하나가, 꼭 하나만의 미덕이 있다.
그것은 진실의 절대적 존중이다. 그렇지만 그의 일상적인 총명은 절대적인 솔직은 세상은 살아 가는 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에게 가리켜 주었다.
「인간 혐오자」가 풍기는 씁쓸한 뒷맛은 바로 거기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의 매우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인간 혐오자」는 제외하고서 그것이 지극히 부르즈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랑생활을 한 이 희극 배우, 평생 여러 가지 이유로 저 수상쩍은 베자르 집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결혼을 잘못하여 결혼 생활에서 맛본 것이라고는 귀찮은 일밖에 없었던 이 희극 배우는 시민적인 행복이라거나 착실하고 평온한 가정생활등과 같은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언제나 가정의 행복이며 가정 생활의 조건과 관계되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다. 결혼과 처녀들의 교육, 그는 늘 이 두가지 점으로 되돌아 오곤 했다
결혼에 있어 그는 네 가지 합당성을 요구한다. 첫째 신분이 비슷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사회적인 필연이다. 농부인 조르즈 당댕은 ' 양반댁 규수'와 결혼했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다음에 기질이 비슷해야 한다.
현학적인 트리소탱은 순박한 앙리에트와 결혼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도 나이가비슷해야 한다 자연은 젊은 사나이가 젊은 처녀와 결혼하도록 운명지워 놓고 있다 아르파공이 자기의 아들과 한 처녀를 놓고 다툰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다.
끝으로 네 번째의 합당성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합당성을 대신 할 수 있는 최고의 합당성이다.
둘째 점은 처녀들의 교육이다 몰리에르가 바라는 것은 이자벨처럼 수도원에 갇혀 있는 엉큼한 처녀도 아니고 아테스처럼 무지몽매한 처녀도 아니고 마그들롱처럼 재치를 부리고 머리가 돈 처녀도 아니고 아르망드처럼 현학적이고 무미건조한 처녀도 아니라, 인생을 알고, 이성적이고, 균형이 잡히고, 명석한 두뇌와 곧은 의지와 정숙한 마음을 가진 처녀,「여학자님들」의 앙리에트와 같은 처녀이다.
보다시피, 몰리에르의 도덕은 아주 실제적이다 그것은 철두철미 실제적이다 그것은 숭고하지도, 엄격하지도, 기독교적인것도, 스토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사회의 복지라는 매우 접근하기 쉬운 이상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서로 도우면서 행복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신사 숙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몰리에르의 언어와 문체

사람들은 몰리에르에 대해서 '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옳지 않은 표현 ' (라 브뤼예르), '뜻 모를 말' (폐늘롱), '이상하고 부적절한 표현' (보브나르그)을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아마 몰리에르는 숱한 걱정에 쫓긴 사람으로서 속필이었을 것이고 즉흥적인 정열에 빠져 소홀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라. 그러나 역시 그가 훌륭한 작가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에 대한 비난은 무엇인가? 그것은 특히 프레시외들과 아카데미가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신사 숙녀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서민층 가까이서 태어나 12년간 빠리를 떠나 있었던 몰리에르는 학술적인 규칙과 상류 사회의 관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 풍부하고 구수한 말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강렬하고 다채롭고 거친 언어는 무대에서는 지극히 효과적인 것이며.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표현은 그만큼 쉽게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문장 구성법이 '유기적이지 못하다' 고 단언했다. 그들이 불평한 것은 반복되고 병치되고 늘 et[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다는 문장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회화의 성질 그 자체이자 일반적 어조인 것이다.
이러한 비평가들은 읽었을 때 길고 얽혀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문장들이 관객이 듣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이 문장들이 저절로 유기적 구조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으로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귀로 듣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몰리에르의 문체는 훌륭한 무대용의 문체이다. 그것은 힘차고, 정확하고, 말하는 인물에 언제나 알맞은 것이다. 연극적 합당성만이 물리에르의 눈에 가치 있게 보이는 규칙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규칙을 지켜 필요한 경우에는 그가 알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저 살롱이나 궁정의 말을 정확히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프레시외들이 조신들의 입으로만 말하게 한다. 그 모방이 하도 충실하므로 그들의 말 속에서 아무리 작자의 흔적을 찾아 보아도 소용이 없다 아무도 견줄 수 없었던 이러한 문체의 다양성이야말로 확실히 극적 표현의 승리이다.


G. 랑송/P.튀프로 공저, 정교수 역, 랑송불문학사 상권, 을서문화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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