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수레무대 극단 수레무대
Home  ::   Information  ::   Production  ::   Schedule  ::   Comedy Library  ::   Member  ::   Board  ::   Link  


코메디 도서관


30   1 / 2   0  

  Greece (5)  

  Rome (5)  

  Middle Age (6)  

  Commedia dell arte (8)  

  Moliere (5)  

  Original Book (1)  

  usa (0)  
Name      수레무대
Subject      Commedia dell arte - Article 2
◎ 色相機能面에서 본 Commedia dell'arte劇의 舞台衣裳에 관한 연구



弘益大學校 産業美術大學校
산업디자인학과 무대디자인전공
정 경 희



초 록

색은 인간이 외부의 세계를 지각하는 최초의 단계이다. 색상은 외부세계의 반영으로서, 인간이 시각을 통해 외부의 사물을 지각하는 것은 바로 이 색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내면 세계에 까지 틈입하여, 그 세계의 일부를 이룬다.
모든 시각예술에서 이 색은, 그 표현의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옛날부터 인간의 색상에서 욕망은 꾸준히 창작물을 통해 발현되어 왔고, 바로 그 욕망이 만족된 삶을 영위하려는 전반적인 인간의 노력의 일부에 다름 아니다.
르네상스의 산물인 Commedia dell'arte극은 자연발생적인 연극의 형태로서, 대다수의 대중을 위해 태동하였다. 그 내용은, 어떤 절대자의 세계를 그리려는 혹은 그 힘을 추앙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의 본연적인 성질의 탐구이며, 그 욕구의 실현이다. 인간을 위한 예술운동으로서의 르네상스가 그 배경이 되어, 당시의 모든 문학, 예술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구속 없이 인간의 감정과 일상사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히, 이 극에 사용된 무대의상의 색상은, 이런 새로운 경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로, 그 극의 시대정신과 더불어 발전한 독창성·실용성 그리고 기능성이 거기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Commedia dell'arte의 이와 같은 의상양식은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모든 공연예술에 까지 살아 남아있다. 더구나 전반적인 예술철학·문화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이 극의 무대의상을 연극적인 기능이라는 공연 예술의 측면에서와, 색상기능이라는 미학적 기능의 측면에서 분석해 내는데 있다. Commedia dell'arte가 철저한 장인정신과 대중성에 바탕을 둔 연극형태라 한다면, 그 무대의상이 극의 성격을 고스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의상형태로 나타나기에 더없이 좋은 전제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극의 무대의상은 물론 그 무대 위에 등장하는 여러 배우들의 각각 특정한 신분과 직업을 구별해내는 데에 그 1차적인 기능이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 그 시대의 사회에 널리 통용되던 일반의상을 차용하였지만, 이 극의 의상들이 갖는 색상체계를 분석하여 본 결과, 그 색들이 상징성과 심리적인 영상의 발현태가 대단히 세심하게 응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Commedia dell'arte가 당시 이 극의 관객인 일반대중에게 큰 호소력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색상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고대로부터 오늘까지 변천되어온 의미의 역사 - 때로 상반되는 의미가 약간의 시간 혹은 공간의 차이를 두고 같은 색상에 나타나기도 하고, 수 천년 동안 변치 않고 한 의미가 한 색상에 매달려 있는 등, 이 색상의미변천의 Panorama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의미의 역사'란 말이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가 쌓아온, 축적된 내용만이 색의 상징성과 심리적 기능태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색상속에는 심리적 연상작용뿐 아니라 동시대의 철학사상, 그 시대적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Commedia dell'arte에서 특히 이 색상의 기능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 당시 르네상스의 문화예술 전반에 나타난 시대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의상에서의 독창성과 개인취향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본 연구에서는 이 극의 무대의상이 갖고 있는 색상기능을 그 시대의 정신, 심리적 요인, 그리고 상징성 등으로 세분하여 분석하였다.

목 차

초 록···················ⅰ
서 론··················· 1
제 1 장 Commedia dell'arte 극의 발생과정과 특징 및 그 시대의 일반의상과 무대의상 ···········7
A. 특 징 ·················10
B. 일반의상과 미파르티 양식(Mi-Parti style)······30
C. 무대의상 ·····················56

제 2 장 색상기능면에서 본 Commedia dell'arte극의 무대의상 ········65
A. 배역에 따른 의상의 종류 ·······················68
B. 색상의 기능 ·····························104
※ 색상도표 Ⅰ,Ⅱ····························139
결 론 ·································167
참고문헌 ································171
영문초록 ································174
졸업작품(사진첨부)····························177

서 론
인간은 색을 통해 외부의 세계를 지각한다.(Zenon(342-270 B.C) 철학자로서 최초의 색채론을 쓴 사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창조물을 채색시켜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본래부터 타고나며, 이 욕구는 원시시대에서부터 꾸준히 발현되어 왔다. 가령, B.C 15000년경의 구석기시대의 인간 창조물에서도 현대의 수준 높은 문화에서와 마찬가지의 색채 표현에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Altamira 동굴벽화에는 Oakred, Yellos Brown, Black 등, 많은 색들을 이용한 다양한 색조와 색의 대비가 나타나 있다.
의상에서의 본격적인 색상도입은 신석기시대로부터 있다.(Heide Nixdorff. - Muller, Weisse Westen - Rote Roben Berlin, 1983, p.5) 이 시대에 들어와 인간은 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기점으로 의상에서의 색상의 기능영역이 넓어진다. 즉, 이상의 목적에 따른 색상의 기능영역이 넓어진다. 즉, 이상의 목적에 따른 색상의 활용이 다양화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상에서의 색상의 기능은, 보다 다양하게 옷감이 발달하고, 그에 상응하는 염료기술이 있어야만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Renaissance는 의상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동·서양의 교류로 직물이 수입되고 직조기가 발명됨으로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천의 종류가 늘어나고 안료가 생산되어 색의 선택이 훨씬 다양해지면서, 의상에서의 색상은 무한히 그 사용 범위가 넓어져서 만족된 삶에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반예술 및 넓은 의미로서의 과학이 새로이 눈을 뜨게 되고, 인간의 지적·정서적 영역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였다. 연극도 마찬가지로 여러 면에서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전문인으로서의 무대 미술가와 무대 의상디자이너가 처음 탄생되고, 연극배우가 그 황금기를 누린다.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난 연극은, 그 이전시대에는 이념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종교의 테두리 속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Renaissance시대에는 인간의 본 모습을 되찾자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 전 유럽에 걸쳐 태동하면서 그것이 그대로 연극에 유입된다.
인간성의 부활을 뜻하는 Renaissance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복원하자는 의도로 그 초기 예술에 반영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적인 연극 형태를 만들었다. 코메디아 에루디타(Commedia erudita)라 불리우는 특권층을 상대로 한 연극(단막극)에 대항하여 이 시대에 함께 Italy에 병존했던 극이 바로 Commedia dell'arte이다. 대중을 위한 즉흥희극인 Commedia dell'arte이다. 대중을 위한 즉흥희극인 Commedia dell'arte는 스페인 치하에서 암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16세기의 이태리를 배경으로, 웃음과 익살, 스페인보다 우월하다는 이태리인의 환상 그리고 그에 대한 조롱을 표현하였다.
이 극은 즉흥적인 대사와 연기로 구성되어 있고, 그 공연장소나 조건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고 상연되었다. 그 명칭이 뜻하는 바대로 전문적인 배우의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여 그런 기술을 오랜 기간을 통해 익힌 배우들은 고정된 배역을 맡게 되었다. 인물의 유형에 맞게 제작된 무대의상은, 그것 자체로 중요한 연극적인 기능을 갖는다. Commedia dell'arte에 등장하는 배역의 연기가 무엇보다도 그로테스크(Grotesque)한 특성을 갖는다고 할 때(그림 1 참조), 이 극의 특성을 적절히 살려낸 형태로서의 무대의상도 과장된 형태일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이 둘은 관객에게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시각적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갖게되었다. 이 극의 무대의상에서 보여주는 색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색의 Contrast효과를 적절히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이 대립 혹은 삼각관계를 기본으로 설정되었다고 할 때 그 관계는 의상의 형태나 색상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어 이 극의 연기와 의상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상인인 Pantalone, 학자 Il Dottore, 탕녀 Colombina, 익살꾼 Zanni, 겁쟁이 군인 Capitano, 그리고 가장 충실하게 전형적인 이태리인 상을 보여주는 Arlecchino 등, 이 극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을 열거만 해 보아도, 이 극의 내용과 인물 성격 표현에서의 다양함과 대립성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Mi-parti 양식을 도입한 형태와 직선과 사선이 들어간 서로 다른 천을 마름모꼴로 재단하여 합쳐놓은 형태의 이 극의 의상은 위의 인물 성격에서 보여지는 대립과 일맥 상통하는 또 다른 대립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연기와 성격에 정확히 일치하는 의상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Kleider machen Leute)
이런 명제에 의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대의상이 연기자로 하여금 '극중 타자'로 변모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역 중 인물의 성격 창조에 있어서 의상이 절대적인 역할을 해 내고 있는 양상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물론 현대 연극에 와서이지만, 비록 그 정도의 차는 있겠으나, 이런 무대의상의 기능은 양의 동·서 할 것 없이 연극에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연극에 있어서 의상의 역사란, 연극자체의 역사로서, 연극의 변천과 더불어 변화를 가져왔다. 본고에서는 일반의상이란 용어를 평상복이나 일반인 사용하는 의상이란 의미만을 하는 것으로 쓰지 않았다. '특수의상'으로서 무대의상과 구별하여주는, 그 이외의 모든 의상을 '일반의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다소의 무리가 있을 줄 아나, 이는 본고의 논리전개에 있어서 편리성을 고려한 것이다.) 초기 연극에서는 무대의상으로 종교 의식에서의 성직자의 의복, 무용의상 등을 그대로 사용하여, 무대의상과 일반의상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 연극에서는 의상 갖는 특정한 색이 각기 특정한 직업을 표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 시대 무대의상의 색상 기능은 직업과 신분을 나타내 주는데 있었다. (Karl Mantzius, 세계연극사, 飯塚支一郞 譯(B. ), p.79, 1930, 東京. 황색은 탕녀, 현명한 뜻의 백색은 노인, 예속을 나타내는 노예는 적색 등으로 일반의상과 구분했다.) 그러던 것이, Commedia dell'arte에 이르러, Renaissance의 전반적인 진보와 더불어 무대의상으로서의 색상기능은 이 극의 내용 전달에 직접적인 수단으로 발전한다. 가령 Pantalone의 의상을 예로 들어보자. 이 인물은 열정적인 사랑의 상징인 붉은 색의 꽉 끼는 바지와, 죽음에 대한 애도를 뜻하는 흑색 Mantel을 입고 화려함, 질투의 새긴 노란색 구두를 신고 무대에 등장한다.
여기서 나타내는 Yellow, Black, Red의 대비만을 보더라도, 이 시대에 와서 색상 기능은 단순한 유희나 장식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벗어나 사회적 상황과 배우의 성격 및 역할을 복합적으로 반영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색상은 종교적·심리적 Symbol 체계이다. (Heide Nixdorff - Muller, Weisse Westen - Rote Roben , p. 55, Berlin, 1983. 여기에서 쓰여지는 색상이란, 흔히들 얘기하는 색의 3속성(색상, 명도, 채도)이 아니라, 그 어휘의 보다 일반적인 함의로써, '물체의 색'이라는 개념과 심리, 물리학적인 측면에서의 색, 그리고 지각색을 총칭한다.)
위와 같은 색상 기능이 실제로 활발하게 이용된 배경에는 그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뒷받침 되게 마련이다.
Commedia dell'arte 당시까지의 색상이론으로는 먼저 Platon(B.C 427-347)과 Aristoteles(B.C 384-322)의 것이 있다. (Ibid, p.55)
이는 물·불·공기·흙 등 그리스 자연 철학을 이끌어 갔던 소위 사원소론에 입각한 색상이론이다. 이와 함께, 중세에 종교적으로 사용되었던 색의 상징성은 우리의 연구를 진행해 가는 가장 중요한 이론적 방법론이 될 터이다. 본 연구가 바라보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Commedia dell'arte 의상의 색상이 가진 심리적 기능이 현대 무대 의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혀내는 데에 있다.
본 논문의 1장에서는 Commedia dell'arte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을 특히 우리의 연구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이 무대의상에 영향을 준 Mi-Parti와 Grotesque 양식을 일반의상이란 영역으로 범주화하여 서술하겠으며, 이어서 Commedia dell'arte를 제외한 그 시대의 무대 의상을, 그것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이 잘 드러나도록 기술하겠다.
제2장에서는 먼저 색상 기능 면에서 Commedia dell'arte의 무대의상을 배역에 따라 나누어 설명한 뒤, 전반적인 인간 심리에서의 기능이란 측면에서 당시에 표현되었던 색상의 기능을 밝혀 보일 것이다. 본 논문이 고증을 토대로 한 무대의상이나 현대의 무대의사, 더 넓게는 색이 활용되는 모든 분야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제 1 장 Commedia dell'arte극의 발생과정과 특징 및 그 시대의 일반 의상과 무대의상

중세에는 유럽문화를 프랑스가 지배하였다. 프랑스는 왕권이 다른 유럽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대하였고 계속되는 영토의 확장으로 자연스럽게 타국과의 교류, 그리고 미비하게나마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나라의 영향은 사회, 문화 및 예술 그리고 종교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고, 이런 상태가 르네상스라고 종교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고, 이런 상태가 르네상스라고 명명된 커다란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인 1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중세말엽에 이태리에서는 베니스공화국(Republik Venedig)이라는 도시국가가 형성된다. 그리고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정복이라는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비단 Commedia dell'arte뿐 아니라 모든 Renaissance의 문화를 탄생시키는 역사적 동기가 된다. 즉, 전자는 베니스가 바다를 통한 동·서양의 무역에 더없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후자의 사건은 그로 인하여 그리스 ·로마 학문과 예술이 직접 이태리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예술이 직접 이태리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고대의 시대정신, 인간자체에 대한 자각이 부활된다. 이렇게 인간을 탐구하려는 자세(휴머니즘)와 함께, 르네상스로 들어와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대중문화와 그 개념이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전반적인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르네상스 의상에서는, 고딕(Gothic)양식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형태가 허물어져가고, 그 대신 그리스·로마의 문화·예술에 깃들어져 있던 기본시각들이 새롭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사정은 연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르네상스시기에 이태리에서 태어난 Commedia erudita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연극을 그 예술 추구의 궁극적 모델로 삼은 연극형태였던 것이다. 이 극은,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이해하고 그 기호가 상대적으로 높은 특권층을 위한 지적연극이었으며, 인문주의 연극이었다. 이와 함께 당시 이태리의 남부를 배경으로 탄생한 Commedia dell'arte극은, 이태리 사회의 암울한 상황-당시 이태리는 스페인의 치하에 있었다-의 요구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발아하였다. 대다수의 이태리 서민대중은 어두운 현실을 잠시동안이라도 잊게 해 줄 수 있는, 웃음을 줄 수 있는 소극형태의 희극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극의 무대의상을 그 색상 기능 면에서 분석할 것이다. 모든 연극에서 그 무대의상이 차지하는 위치나 기능은 나중에 다시 체계적으로 언급할 것이지만, Commedia dell'arte의 무대의상이전에, 그 당시의 일반의상과, 이에 영향을 끼친 몇몇 의상에 대해서 이 장에서 다루어 갈 것이다.
르네상스에 들어와서도 전반적인 유럽의 일반 복식사에 프랑스의 그것은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르네상스의 여러 왕과 그들이 애첩의 의상이 그러하였다. 르네상스 양식의 의상이 본격적으로 복식사에 그 확연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5세기 말엽부터이다. 이의 가장 큰 특징-중세의 그것과 비교하여-으로는, 신체를 노출시키는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점과, 교회로부터 금지 당한 의상색상이 부활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Commedia dell'arte극의 무대의상에 나타난 색상기능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바로 이 시대의 이태리에서 연극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무대미술가가 활동하였다는 점, 아울러 전문적인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탄생하였다는 점이 그 뒷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에 사상적인 기초를 마련해 준 것들로 그 당시에 나온 이론들만 들어보자면, 뉴턴의 광학이론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색채이론 등이다.

A. 특징

Commedia dell'arte는 16세기 중엽에 이태리에서 탄생하여 짧은 기간동안 전 유럽으로 번져갔다.(도판 1참조)
이 당시 이태리는 스페인의 압제하에 있었고 한편 Renaissance가 한창 그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었는데, 이 사회적 상황과 문화계 전반을 지배하던 Renaissance는 우리가 Commedia dell'arte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우선, Commedia dell'arte가 어디에서 그 영향을 받았는지 혹은 기원의 형태가 무엇인지에 관해 확실히 규정해야 하나, 아직 우리에게 이에 대한 확실한 결론을 내려 줄 만한 증거가 없다. (Esrig David - Commedia dell'arte, Delphi 1021 p. 23. Nordlingen, 1985.) 이는 Commedia dell'arte의 연극사적인 측면에서의 연구가 될 터이지만, 어쨌든 연극사 역시 '역사'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때 그 역사를 구성하는 논리가 신화의 전개논리와 같을 수는 없다. 가령, 신화 속에서는 모순된 사실들이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나열 될 수 도 있고, 그 이전의 맥락에 비추어 전혀 뜻밖의 새로운 사건이나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으나, 그런 우연성이나 의외로움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절대자의 의지를 빌어 설명해 버리면 그만이다. 즉, 신화 속의 어떤 사실은 그 이전의 근원이나 원천에 관한 명백한 연관성이 없어도 얼마든지 끼어 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Commedia dell'arte의 '역사'를 이와 같은 신화의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느 학자는 이 극의 기원이 Attellanenspiel에 있다고 하고, 인문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Commedia erudita를 대중성을 띈 풍자극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이 극이라고 하기도 한다. (Vito Pandolfi - Il Teatro del Rinascimento e la Commedia dell'arte, p.22. Rom, 1969.) 또, 카니발 마스크가 이 극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Commedia dell'arte의 기원이나 영향에 관한 이러한 주장들은,m 참된 역사적인 안목에 의한 관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진실로 역사의 안목으로 이 극을 규정하려 한다면, Commedia dell'arte의 어느 한 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극의 내용, 그 당시의 사회상, 기타 문화와의 수수관계, 그를 수용했던 관객 즉, 그 대중의 역사 등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이전의 극 형태와의 명백한 인과관계를 밝혀 내야만 한다.
Commedia dell'arte의 기원에 관여하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렇긴 하더라도, 이 극이 여러 면에서 풍부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극은 그 이전이나 이후의 연극 형태와 비교하여 볼 때에 독특한 창작물인데, 극작가가 써 둔 대본에 바탕을 두고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배우 자신의 즉흥성과 전형화 된 연기 패턴으로 이 극이 이끌어져 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이 극은, 극작가보다는 배우 중심의 연극이라 할 수 있고 그 형태가 성숙되어 갈 무렵에는,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드라마적인 성격까지 띄게 된다.
한 극단은 늘 같은 역만 맡고 있는 배우들로 구성되는데, 작게는 3명으로부터 25명 정도의 대규모까지 그 규모는 일정치 않았었다. 여러 가지 자료나 그 당시의 저작물들의 내용들로 미루어 이 극단들은 연극적으로 철저히 잘 짜여져 있는 집단으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각 극단들은 대개가 자신의 배우들에게 필요한 의상과 도구 그리고 이동식 간이무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Phyllis Hartnoll - The Concise history of Theatre, p.61, N.Y. Times Hirror)
배우들 개개인의 숙련도도 대단히 높아서 스스로 극적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이고 역시 자신의 연기를 스스로 개발, 훈련하였다.(그림1참조)
한편, 최초로 Commedia dell'arte에서 여자 배우를 등장시켰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Ibid, p.64.)
이러한 사실들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 극의 명칭에 들어있는 Commedia dell'arte라는 부가사가 '직업적인 배우의 기술/예술'을 뜻한다고 하였을 때, 앞서 말한 이 극의 성격이 명칭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극이 다루었던 소재는 평상적인 일상사, 정치적인 것, 종교적인 것을 포함하여 현실문제 즉, 스페인 독재자에 의해 대다수의 이태리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 등, 그 폭이 매우 넓었다. (Ibid, p. 63.)
한편으로 억눌린 대중들에게 그러한 소재들을 희화하여 웃음과 익살을 주면서도, 또한 강한 이태리인의 의지를 부각시켰다는 점 역시 이러한 폭넓은 소재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실제로 Commedia dell'arte는 그 공연 내용에 있어서 중세의 소극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유사한 익살과, Commedia erudita 즉 그 당시의 이 극과 대립되는 인문학자풍의 박식극을 흉내낸 줄거리 등을 우리는 발견 할 수 있다. (Esrig, David ; Commedia dell'arte, Delphi 1021, p. 214 Nordlingen, 1985.)
이 극이 상연되었던 장소는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나 귀족의 궁전 앞마당, 공개적이고 정치적인 삶이 벌어지는 곳 등,(그림 2 참조) 조소적이며 익살스런 구경거리를 보다 폭넓은 대중들에게 제시하기에 적당한 곳은 어디나 가리지 않았다. (Ibid, p. 44-59.) 배우는 주목을 끌 수 있는 두드러진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관심을 호소하였는데, 가령 관객들에게서 별 반응이 없다든지 할 경우엔 때에 따라 그 연기의 부분 부분에 곡예를 삽입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시대에 들어와서 중세때와는 달리 인간의 신체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싹텄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자각이 Commedia dell'arte의 연기나 의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제2장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이 극의 무대의상 양식 및 색상기능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는데, 그러한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다.]
아무튼, 중세에는 인간의 신체가 종교의 이념의 제도에 의해 억눌려져 있었다. 즉, 인체는 인간의 영적인 활동에 있어서 무거운 짐일 뿐이며 죄악의 음모가 그 곳에서부터 생겨나는 함정이라 여겼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Renaissance 운동이 시작되면서 고대 그리스 예술의 새로운 발견과 함께 인체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된다. (Ibid, p. 192-194.)(그림3참조)
그렇게 해서 그 자연스러운 상태로서의 인체는 Commedia dell'arte에서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중요한 motif로 작용하게 된다. 배우의 신체는 웃음의 힘을 유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들 중의 하나로 격상되었고, 어느 연기자이든 신체와 정신의 합일을 자신이 도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Ibid. p. 192-194.)
이 시대에 마씨모 트로야노(Massimo Trojano)가 쓴 저서에서 우리는 당시 이 극의 내용과 상연 모습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Discorsi delli trionfi giostre, apparati, e delle cose plu notabili, nelle sonctuose nozze dell illustr, et eccell, sig, Duca Gulgiemo...vell'anno 1568...야 Massimo Trojano de Napoli, Munchen, 1568.)
그것에 의하면 Commedia dell'arte에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대본이 없었으나,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던 몇몇 '필연저긴 대사(Notwendig Worter)'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어떤 배우가 등장하거나 교체되는 시기를 결정해주는 암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가령 아주 짧은 시간동안 10명 정도의 배우가 아무런 혼란 없이 무대에 등·퇴장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모든 Commedia dell'arte에 반드시 들어있는 고착된 대사" (Esrig. David. op. cit, p.24)에 의해서였다고 위의 책은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Orlando di Lasso는, 오락성에 치중하여 주제를 선택하고, 특히 그 무대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보노라면 웃음을 참아 낼 도리가 없을 지경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Phyllis Hartnoll, op.cit., p.61)
어쨌든, 경우에 따라서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복되어 상연되기도 하였기에, 그 Text나 의상, 배역을 임의로 바꿀 여유가 없었으므로 무대에 올라 갈 배우들은 이미 오랜 숙련기간을 통해 세련되어 있어야만 하였고, 그 극에 필요한 모든 의상이나 소도구 등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Ibid, p. 130.)
16세기 중반 뮌헨(Munchen)과 란드슈트(Landshut)에서 이태리의 Commedia dell'arte극단이 초청되어 상연한 적이 있어서 그 당시의 기록이 지금껏 남아있다.(그림 4) 1568년 2월 22일에, 로팅엔(Lottingen)의 레나테(Renate)와 바이에른(Bayern)의 빌헬름(Wilgelm)황태자와의 결혼식이 트라운슈니츠(Traunsnitz)궁에서 있었다.
당시의, 이 궁전의 문서(편지, 영수증 등)를 토대로 추리해 볼 때 이태리 Commedia dell'arte극단은 여러 해 동안에 걸쳐서 전 유럽에 초청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궁전 벽면의 그림 "익살광대"(Narrentreppe)와 곡식저장고의 천장 벽면 그림("Zimmer des Rates")에서는 공통적으로, Commedia dell'arte의 의상이 묘사되어 있다. 한 그림에서는 Pantalone가 검정의상을 입은 상태로, 또 다른 그림에서는 흰색의 의상, 다시 말해서 Zanni의 의상과 같은 색상을 입은 상태로 묘사되어 있다. (Ibid, p.44-59)
이 그림들이나 위의 문서들로 미루어 보아,Commedia dell'arte극은 귀족의 향연이나 왕의 축제 등 즐거운 날에,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공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태리의 연극학자 비토 판돌피(Vito Pandolfie)의 말대로, 완전하게 전형적인 연극의 형태를 갖춘 Commedia dell'arte는 1550년경부터 이태리 국내는 물론 전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하였으며, 향후 200년간 유럽 전체의 문화 속을 깊이 파고들어 갔었던 것이다. 독일뿐 아니라 불란서와 영국에서도 Commedia dell'arte가 순회공연을 가졌던 기록을 우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1568년 이태리의 Mailand에서 첫 공연을 가지면서 탄생하는 Gelosi극단은 1571년 프랑스 초청 공연을 가졌었다. (Ibid, p.33. 한편, 이태리 연극학자 Pandolfl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다. "Commedia dell'arte극은 연극배우 없이 생각할 수 없고 또한 극단 Gelosi 없이도 이해할 수 없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Commedia dell'arte의 제2의 조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이 극이 보다 수준 높은 예술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되어 전승되었으며, 이 극의 무대 의상은 보다 다양한 색상으로 나타났다. 익살꾼의 모습은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로 표현되었으며, 무대의상도 보다 더 세련된 프랑스식 제단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France에서도 이 극의 여자 배우들을 크게 부각시켜 그 중요성은 여전히 컸었고, 한편, 장식적이고 사교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들의 위치는 늙은 사람을 시중들거나 여성의 상징인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는데 있었다. 특히, 그들의 화려한 의상에 프랑스 문화의 화려한 장식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Commedia dell'arte에서는, 의상전체를 이루는 구조의 일부로서 마스크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의상이 인물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표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점 역시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가령, Arlecchino는 번쩍이는 천을 마름모꼴로 잘라 붙인, 서로 다른 색상이 강하게 Contrast를 이루고 있었고, Dottore는 검정색 가운을 입고, 흰색 칼라에 검정모자를 쓰고 등장하였으며, Pantalone는 붉은 속옷과 검정 망토를, 그리고 농부 출신의 Brighella는 초록색 줄무늬가 들어간 의상을 각각 이용하였던 것이다. (Ibid, p. 76.) 이 의상은 또한 당시의 정국의 상태를 상징하고 있는 주위 배경속에서 대립관계, 삼각관계 등 첨예한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가령, 늙은 상인-즉 황금의 추종자로 상징되는 -역의 Pantalone와 늙은 학자 Il Dottore와의 대립, 스페인에 대항해 싸우는 근면한 농촌 출신역의 Brighella와 게으르고 약삭빠른 늙은 하인역의 Arlecchino와의 대립, 늙은이들과 젊은 연인들과의 대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그림 5 참조) 한편, Brighella와 Arlecchino는 모두 하층농민으로 Pantalone와 Dottore 등의 귀족계급에 대립된다. (Ibid, p. 130.) 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혹은, 극에 나타난 대립이나 긴장을 중재하는 역할로서의 익살꾼(Brighella, Arlecchino)은 앞서 말한, 마름모꼴을 이용한, 각 신분계급의 색상이 '혼합된' 의상을 입었다는 사실에서도 Commedia dell'arte에서 극의 내용이나 인물의 성격에 의상을 조합시키려는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하겠다.
16세기말부터 18세기까지의 Commedia dell'arte극에 사용된 위와 같은 무대의상은 모두 의상실 조합에서 제작되었다.
이 시대의 무대의상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각 계층간의 신분을 나타내 주기 위해 관복(Robe, 佛)을 사용했다는 것과, 배역의 출신지방을 상징하는 특정지방 고유의 향토복들을 무대 위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Ibid, p.76-83.)
특히, 후자는 그 배우들이 공연시에 사용했던 방언으로 된 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가령, Milano 출신의 농부역을 맡은 배우는 Milano 지방 고유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여 그 지방 사투리로 연기하는 식이다.
이리하여, Commedia dell'arte는 자연상태로서의 인간성 위에서 성립된 집단개념을 기본적인 Motif로 하여 높은 수준의 예술성과 창조작업에서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르네상스의 산물이다.
그것이 어떤 장르(Genre)에 속하는 것이든 무릇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예술들이 다 그러하듯이, Commedia dell'arte도 17세기 말 경에는 바로 그의 조국 이태리에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일반대중을 위하여 발전하였던 이 극은, 그 이후에 특히 여러 연기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그림 6참조)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부분적으로 지적 될 것이지만 - 후대의 극작가들에게 준 영향도 절대적이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Commedia dell'arte의 직계 후손이라 할 만한 후대의 대가들을 대충으로만 열거해 본다 하더라도 Shakespeare, Moliere, Brecht, Beckette 등이다. (Commedia dell'arte가, 고대. 중세. 현대로 이어지는 연극사에 있어서, 소극의 흐름을 종합하는 분기점을 이루었다는 평가는, p.21의 도판 1로 정리된 계통표를 보더라도,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색상기능면에서 본 무대의상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이를 자세히 다룰 여유가 없으나, 가령 이 극이 현대의 여러 형태의 극작품에 끼친 영향의 수수관계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두세 편의 또 다른 논문으로는 오히려 부족할 정도이다.) 앞으로 자세히 다루게 될 터이지만, 이 극의 무대의상은 후대에까지 그 형태가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행사복이나 축제복 혹은 무대의상에까지 그 의미가 전해지고 있다.





(도 판 1)

도판 1)의 설명 : Karl Gunther Simon에 의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소극(Mimus)계보
(1) Mimus(소극)
(2) (고대 희랍의 Phlyakes)
(3) (로마의 소극 Fabula Atellana)
(4) (로마의 판토마임)
(5) (게르만족과 켈튼족의 이교도적인 춤)
(6) 중세대 단독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익살꾼
(7) (광대극 · 익살극)
(8) (쏘세지 같은 뚱뚱보란 뜻으로, 익살광대극)
(9) 모스크바 1924년 Wachtangaw의 >Prinzessin Turandot<(공주 투란도트) 상연으로 코메디아 델아테의 수준높은 르네상스를 재현했다.
(10) Samuel Backett(Black commedy)영향




그로테스크한 연기의 형태
(그림 1-1)


(그림 1-2)




(그림 2)
Commedia dell'arte극의 상연모습(1772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상연한 이 극은 간이 무대장치로, Brighella, Colombina, Pantalone, Arlecchino, Dottore 등의 인물이 무대에 올라와 있다. 의상의 색상은 흰색-검정색, 엷은 핑크-하늘색, 흰색, 빨강-검정, 검정-흰색 등이다.
시카고 연구소 소장(Chicago Art Inst itute)


1503년 Freiburg에서 발견된 신체 해부도. 인간의 신체는 각부분마다 종교적으로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별자리로서 구분되어진다.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 그림은 연극에 있어서 특히 Commedia dell'arte극과 같은 희극(혹은 소극)에서, 기쁨과 웃음을 전해주는 직접적인 매체로서 신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림 3)


(그림 4)


>Pantalone, Leandro, Il Dottore, 스페인에 대항하는 싸움< Commedia에 흔히 나타나는 전형적인 내용으로서 스페인 전쟁의 원정이 소재이다. 그들은 이태리 국민을 대변하여 스페인에 대항하는, 행동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Recueil Fossard의 삽화(16세기)


Pantalone는 Zanni의 거짓말에 대하여 격분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Zanni는 그의 목숨을 Pantalone에게 빌고 있다. Zanni의 의상은 폭이 넓은 이태리 농부복(밤색)이다. Pantalone는 16세기 당시의 일반적인 남성복(흰색, 붉은색)을 입고 있다.


Pantalone의 연기는 Buster keaton의 >The Navigator<에 나타남.

Pantalone의 해학적인 연기표현이 20세기 무성영화에 그대로 전승된다.

Buster Keaton의 >Pajama party< Dottore의 연기가 20세기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여준다.

(그림 6)


B. 일반의상과 미 파르티 양식

1) 일반의상
프랑스와 영국간의 100년 전쟁이 진행되면서, 유럽에서는 모든 문화와 예술이 활발한 교류를 시작한다.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와 의상양식에서 여러 가지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를 즈음해서이다. 특히 이태리가 지정학상 그런 영향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은 우리가 Commedia dell'arte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Karl 8세가 나폴리를 정복하면서 이태리에 실크가 유입된다. 그 이후, 이태리 안에서는 플로렌스(Florence)와 루까(Lucca)에서 직접실크가 생산되기에 이르렀고, 역시 이태리에서 최초로 직조기가 만들어져서 직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Jacques Wilhelm; Modenschu der jahrhunderte; Berrelsmann Lesering, 1900, p.31.) 이렇게 되자, 의상에서의 직물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지게 되었다. 전시대까지만 해도, 가내수공업의 형식을 통해 염료와 직물이 모두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이,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발전을 거쳐서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의복의 형태와 색상선택이 매우 활발해지게 된다.
일반 복식사에 르네상스운동이 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말경이었다. 모든 문화가 다 그러하듯이, 의상에서의 르네상스 양식으로서의 변모는 오랜 기간을 거쳐 서서히 진행되었다. 중세 때부터 지속되어오던 양식인 Gothic Style은 르네상스에 접어들어서도 오랫동안 그 형태가 지속되면서, 한편 새로운 Renaissance Style의 의상이 서서히 가미되는 것이다. 전자의 의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 단순한 선의 흐름이라 한다면, 후자는 장식적인 효과가 강조된 특이한 form의 이용이 가장 두드러진다 하겠다. (그림 7참조)
가령, 이 당시 모든 여자와 남자의 의상에서 머리의 장식을 볼 수 있는데,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장식을 머리에 활용하였다. 전형적인 형태로 굳어진 모자뿐 아니라, 두건을 사용한다던지, 단순히 여러 개의 보석으로 치장하던지 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머리에 장식은 Renaissance의상의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Newton, Stella Mary; Renaissance Theatre Costume, London, 1976, 265) 이 시대에 나타난 모자 중, 가장 특이한 것으로 카페(Kappe)가 있다. 이는 뿔로 만든 것으로, 붉은색 혹은 검정색의 천으로 그 위를 아주 사치스럽게 장식하였다. (그림7에서 다양하게 발전하였던 이 시대의 머리장식을 잘 보여주고 잇다. Jakob de Gheyn의 삽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연인과 류트를든 인물의 머리에 쓰여진 것이 바로 Kappe이다.) 이 머리장식들은, 신체의 의복과 조화를 잘 이루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폭이 넓은 형태의 의상에 변화를 주기 위한 방법으로, 세로로 네 군대를 절단하여 (그림8) (그림8의 왕의 의상에서 가슴부위에 이 갈라진 틈이 잘 나타나있다.) 단순한 선이 갖고있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던 것도, 바로 모자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는 매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르네상스 의상양식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변화는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었다. (Jacques Wilhelm, op.cit, pp.30-32)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 어떠한 미학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새로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신체의 윤곽선이 두드러지는, 꼬 끼는 형태의 의상이 남·여성복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의 초기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의상에서의 '유행'이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당시의 어느 의상에서나 의례껏 그 일부로 나타났던, 겉옷인 까운(Over-garment, Mantel)의 헐렁한 형태가 한때 의복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로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 의해서이다.
남성복의 형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당시 플로렌스(Florence) 지방의 의상이었다. 남성복은 짧은 속저고리(Hemd)와, 다리의 윤곽이 그대로 나타나는 몸에 꼭 끼는 바지(Rock)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바지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Kniehose, Haute-de-Chausse)긴 것이었고, 이 논문의 뒤에서 다루게 될, Commedia dell'arte극의 판탈로네(Pantalone)의 바지에서 당시 남성복의 전형적인 바지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1583년에는 필립 스틉스(Philipp Stubbs)가 이러한 바지형태를 'Anatomic der Miβbreauche'(신체노출의 남용)라 비판하고부터 다시 또 다른 형태의 바지가 나타나 일반의상에서 병용되는데, 이것이 Pumphose이다. 이 바지는 상대적으로 헐렁한 것으로, 직기에 의해 짜여진 모를 그 주재료로 썼다. 바지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지면서, 앞서 말한 꼭 끼는 형태의 바지에서 볼 수 없었던 유연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이는 특히 프랑스에서 널리 유행되었다. 그것은, 자국민이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는,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Commedia dell'arte의 무대의상에서는 쟈니(Zanni)와 알레키노(Arlecchino)의 의상에서 이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남성복의 자켓(Wam)은 그 길이가 짧아져서 다리를 모두 드러내주게 되었다. 여기에는 슬래쉬(Slash, 틈)가 벌어진 형태의 소매가 달려있었고, 겨울에는 예리하게 파진 틈 속에 (털·모피종류) Pelz로 속을 넣어 입거나 걸치는 형식으로 변형시켰다. 이 Wam은 귀족의상과 서민의상에 일반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프랑소와 1세(Fransois I)때에는 검정색 줄무늬가 들어가 Wam이 처음 나타나는데, 이 줄무늬는 점차 그 폭이 넓어지고, 동시에 어깨에 퍼프(Puff)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남성복의 재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양화하는데, 실크이외에도 빌로드(면직우단) 등의 직물도 이에 활용된다.
앙리 2세(Henni Ⅱ)때에는 새로이 까운 형식의 남성복이 등장하여 축제날에 혹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제복으로 쓰이게 된다. 이 의복양식은 지금까지 그 명칭(Robe, 관복) (Jacques Wilhelm; op. cit, pp.32-33)과 함께 이어져 내려온다.
이 양식은 Commedia dell'arte에서 Pantalone나 Dottore와 같은 인물의상에 활용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갖는 의상형태의 한 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Robe'에는 주로 검은색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의상에 나타난 르네상스시대의 정신인, 극을 다한 화려함과 실용성의 추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특히 후자는, 흰색이나 다른 밝은색의 의복에 비해 검정색의 의복이 세탁에 필요한 시간을 반감시켜 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의 의상은 대체적으로 중세에 비해서 그 형태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유럽귀족사회에서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수명을 유지하는 흰 깃털의 모자와, 털을 사용한 여러 꼴의 모자가 여성의상의 일부로서 인기를 끈다.
이 시대에 유럽 전체의 여성복에 프랑스의 Anna여왕과 그 궁전의 의상양식이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여성복에서 팔소매를 없앤 스타일이 점차 일반화되고, 르네상스 초기에 나타났던, 남성복에서와 비슷한 까운(Mantel)이 점차 변형되어, 걸치는 형식이 아닌, 뒤쪽에 대다는 형식의 치마헤(Zimarre 혹은 MArlotten)도 귀족사회의 여성복의 일부를 이루는 의상으로 등장한다. 코르셋이 나오면서 의상의 스타일이 혁신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역시 앞서 설명한 '신체의 윤곽을 드러내려는' 의도에 의함이었음은 물론이다. 여성복 윗도리의 소매는 겨드랑이로부터 양쪽이 부푼 형태의 Puff를 주어 마치 큰 접시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아마포로 만들어진 목주변의 레이스장식(Haiskraus)이 나오면서부터 전체의상의 형태가 특히 목부분과 그 주위에서 시각적으로 좀더 강하게 표현되었다.
이 레이스장식은 당시의 여성복과 여성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좀 더 세분해보면 남성복에서는 목둘레가, 여성복에서는 앞가슴 부위가 강조되어 장식되었다. (Greben Christa; Die Darstellung des RenaissanceKostums in der Maler seiner Ziet, p.230. Frankfurt, 1983) 그런 효과는, 당시에 일반화된 벨트나 귀금속·보석류의 악세서리에서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르네상스로 들어오면서, 유럽에서 왕권이 강화되고 상대적으로 교회의 힘이 약해지면서, 왕실이 일반사회에, 그리고 문화전반에 큰 영향을 주게된다. 의상양식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데 왕의 기호가 자신의 의상이나 신하들의 그리고 그의 애첩들의 의상에 직접 반영되고, 나아가 일반의상으로 까지 확산되곤 하였다. (그림9) 왕실의 영향력은 이렇게 한 나라안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왕권이 강화하면 의례껏 영토확장이라는 명목으로, 비록 전쟁의 형태로나마, 나라간의 교류가 빈번해진다. 동·서양의 교류도 활발해져서, 문화양식과 의상스타일의 교류는 그야말로 '직접적인' 수수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태리에서 직물산업과 염료산업이 발전하여 의상에서의 직물과 색상을 자유자잻 다양하게 활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대로이지만, 이러한 경향이 빠른 속도로 전유럽에 전파되었으리란 것을 앞의 사실을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서 기술한 르네상스양식의 의상과 함께, 의상에 대한 일반개념도 혁신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중세에는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나, 단순히 몸을 가려주는 기능(소위 수치설에 기인하는)으로 인식되어졌던 의상의 개념에서, 르네상스와 더불어 장식적인 기능이나 심미안적인 발현태라는 다른 개념으로 변모한다. 의상은 이제 그것을 입는 사람의 취향과 감각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 미적인 안목을 드러내 줄 수 있는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르네상스의상의 색상에 있어서는 검정색의 폭넓은 사용이 가장 두드러진다 하겠다. 이 시대의 의상에서 검정색의 사용은 먼저 스페인의 의상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려는 의도로 그러하였으며, 이러한 검정색에 대한 편애적인 취향은 전유럽으로 퍼져나가 일반화되고, 특히 이태리에서는 그 사용범위가 아주 넓어서, 유럽전역을 통해서 가장 자유롭게 이 색상이 활용되었다. 이 검정색은 종교개혁을 겪고난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축제복의 의상색으로 굳어진다.
이 검정색의 직물로는 주로 모섬유나 면직우단이 쓰였는데, 1560년 이후에는 결혼복으로 쓰인, 공단으로 만든 검정색의 바지와 자켓이 채택된다. 모직물로된 검정색의 의상은 관복에 많이 쓰였었다. 이 관복은 그 형태는 일정치 않았으나(거의 땅에까지 끌리는 Weiter, 앞이 터진 형태의 Vorneoffener, 앞서 말한 Mantel과 Rock를 붙여 놓은 형태의 즉, 길게 내려간 Mantelrock등)(Mary, Newton stella; Renaissance theatre Costume; pp.21-50, London, 1976
), 모두 길고 헐렁한 형태의 의상이었다.
이 관복을 제외한 일반적인 남성복과 여성복의 색상은, 남·여 구별없이 밝은 색조를 주로 사용한다. 흰색, 밝은 청색(Lightblue), 연록색(Lightgreen)등이 이 시대에 사용된 일반의상의 대표적인 색상인데, 8-10색 정도의 (경우에 따라서는 10-10색까지라 잡기도 한다.) 서로 다른 색상을 자유럽게 선택함으로써, 개인의 취향에 따른 여러 뉘앙스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덧붙여, 당시에 영국으로부터 영국식 빨강(Bristol-Red)과 켄달그린(Kendal-green)이란 의상색이 최초로 나타난다.(Brooke Iris; Theatre Costume, p.60, London, 1969) 이것은, 이 나라에서 스페인색의 색상을 거부하고 각종 색상을 다양하게 실험했던 결과인데, 도시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색들은 이후 오랬동안 전유럽의 유행색으로 지속된다.
르네상스 남성복을 이루는 바지의 형식은 프랑스식, 스페인식, 이내리의 베니스(Venezia)식등으로 세분된다. 이는 한결같이 값비싼 천으로 만들어졌고, 역시 비싼천으로 세련된 절단(Schnitt)을 통해 만들어진 Wam과 함께, 각 의상부분의 색깔이 저마다 달라야했었다. 서민복 의상의 색상으로는 Blue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이것은 윗사람에 대한 복종이나 정절의 의미로서, 하층계급과 서민계급에서 사용하였다.(Mar von Boehn; Das BunenKostum, pp.258-2)
우리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더 집중되는 이태리의 의상을 일관적인 하나의 형태나 양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밀라노(Mailand)와 나폴리(Neapel), 플로렌스(Florence) 지방에는 스페인양식이 유행하였고, 베니스(Venedig)에서는 그 지방 특유의 양식이 변화없이 지속되는 등, 지방에 따라 다른 형태와 색상이 발달하였다.
가령, 이러한 다양성은 Commedia dell'arte극에서 나폴리 출신의 Pantalone는 나폴리식의 의상형태에 스페인풍의 색상이 절충되어 있고, Capitano의 의상은 어느모로나 스페인의 군인복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에도(Ibid, p.60 젊은 도제들은 여름과 겨울에 Blue의 의상을 입어야하는데, 그 색상은 '복종'을 뜻하고 있다.)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방문화가 유입되면서 함께 들어온 의상의 색상, 즉 한 인물의 의상안에 단색이 아닌 터이키블루나 붉은 적색들의 중간색 그리고 노랑이 함께 쓰인 형태가 Commedia dell'arte극의 익살꾼인 Arlecchino의상에 그대로 나타나고, 길고 헐렁한 베니스식의 Zimarre역시 이 극의 여성의상에 활용되며, 르네상스식의 까운(Mantel)은 검정색의 실크로 만든 폭 넓은 Talar(앞서 말한 Vorneoffener이다. 법관·변호사·성직자·교수의 까운이나 국왕의 외투가 모두 이 형태이다.)의 형태로 Pantalone의 까운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장을 마치도록 하자.

2) 미파르티 양식(Mi-Parti Style)
Mi-Parti의 어원은, 라틴어의 'parti-colored(영)'를 뜻하는 mi-partium에서 찾는다. 현재의 그 영어명은 'divided hood'이다.(Veronika Mertens; Mi-parti 민 Zeichen, Kierdort, 1983, p.2)
십자군 운동인 시작되자 그 군대는 유럽의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의 여러 군인들로 구성된다. 이렇게 교회의 힘에 의해 같은 십자군이란 집단으로 구성되어지기는 했어도, 각 군인들은 어떠한 형태를 통해서이든 자국민임을 나타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이나 무기(방패, 창) (그림 10)에 고유한 형태와 색상을 사용하였다.
의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타국의 군대에 비해 두드러지는 독자적인 군복을 착용함으로써 서로 다른 종족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었다.
이렇게 비단 의복뿐만 아니라, 장신구로서의 무기가 모두 의상의 큰 테두리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Mi-Parti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하여 군복의 형태로 처음 의상에 나타나는 Mi-Parti는, 신체를 수직으로 이등분하여, 그 나뉘어진 각 부분에 서로 다른 (대개는 색상 대비가 두드러지는) 색의 천을 사용해 만든 의복을 일컫는다. 이것은 서로 다른 색상의, 수직선과 사선이 혼합된 작은 마름모꼴이 여러개 인접된 형태로도 발전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천이 서로 혼합 혹은 교차되어 있다고 할 때, 이 천은 색상뿐 아니라 그 재질도 서로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중세에 방패형 타입의 군인복에서만 이 형태가 나타나다가 14∼15세기 경에 북부 이태리에서 귀족이나 부유한 계급의 의상에 부분적으로 적용되기는 하였으나 (그림11), 더욱 광범위하게 쓰여진 일반 의상의 한 형태가 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 양식이 일만 복식사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5∼16세기경을 거쳐 오랫동안 지속된 독일의 축제의 한 형태에서부터이다. 단지 「놀이」(Spiel, 영어로는 'play' 정도가 되겠다. '놀이'라 옮겨 보았으나 독일어의 이 명칭의 정확한 역은 될 수 없는 듯하다.)라 명명된 이 축제에서 어떤 경주자의 복장이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그의 역할은 불을 끄는 것으로, 한 손에는 창을 (군인이라는 신분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다른 손에는 불을 끌 수 있는 잎다발을 들고 뛰었다. (그림 12) 관례적으로 그 경주자는 군인 출신 혹은 그 역을 맡은 인물로, 신체의 중앙에 수직으로 분리하여 그 왼쪽과 오른쪽의 색상이 서로 대비를 이룬 의상을 입었다.(Id, Ibid; p.4) 면이 분배되고 색상대비가 두드러진 이 의상은 명시성이 대단히 높았고(Ibid, p.1),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어 널리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명시성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후 Mi-Parti는 군복 이외의 다른 의상에로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되어 갔는데 무대의상으로서의 Mi-Parti 양식은 1524년에 공연된 한 바보극(Narrenspiel)에 나타난 것이 처음이다. 그 극의 배우의상으로서의 Mi-Parti는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색의 분할을 통해 의상의 형태를 과장되어 보이게 하였고, 색상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의상에 도입되어 인물들의 성격을 설명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Narrenspiel에 처음 나타난 Mi-Parti는 그 이후로 극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든, 거기에 등장하는 희극배우(혹은 피에로) 의상의 한 전형으로 정착된다.
이 양식의 의상에 쓰여진 대표적인 색상으로는 Red-White, Red-Green, Red-Yellow등의 짝을 들 수 있으며 모두 대칭적인 색의 분할로 이루어진다. 어느 시기에건 주로 남성복에 많이 이용되었으나(Id, Ibid, p.4), 간혹 여성복에 이 양식이 쓰여지기도 하였는데 rm 경우 남성복과 구별하기 위하여 수직배열 안에서 번쩍이는 색상의 줄무늬를 부가하였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그 사용범위가 넓어지면서 이 의상에는 당나귀 형태의 모자(Eselsohrengugel, 그림 14-3참조) 몸통과 따로 떨어져 있는 소매(Hangearmel, 그림 14-3), 방울(Schelle, 그림 13-1, 13-5), 새부리처럼 생긴 신발(Schnabelschuhe, 그림 14-1) 등이 그 부분으로 첨가되어,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모습을 띄어간다.
바지는 몸에 달라붙는 형태로 그 폭이 줄어들었으며, 르네상스와 더불어 그 사용된 색상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또 더욱 과장된 색조로 변화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양식은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남들보다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한 의상으로서는 적격이었다. 초기에는 여러 색상을 혼용함으로써, 도 한편으로 각 색상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의미를 의상에 도입시킴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일반의상에 적용된 Mi-Parti는 초기에는 주로 명예심이 없는 서민층이나 시종, 하인들의 의상에서 발견되는데, 시중드는 사람들의 의상색은 그들의 주인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Heide Nixdorff, Hei야 Muller, Weiβe Westen - Rote Roben, Berlin, 1983, p.29) 처음에는 이 Mi-Parti가 그 주인계급 즉 귀족계급이나 고위관료의 의상에는 흘러들어 가지 않았던 듯하다. Mi-Parti 양식의 도입이 의상에 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물론 색상에서의 변화이고 이것이 의상의 형태까지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색상이 갖고 있는 기능의 하나로서의 '대비'의 효과를 최대로 활용한 이 양식은 그것이 의상에 나타났을 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다른 형태의 의상인 것처럼 지각하게 하는 심리적 효과를 유발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색상은 그 역사, 사회적 배경과 입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었다. 노예나 농노들은 대체로 광택이 없는 어두운 빛깔의 직물로 그 의상(Mi-Parti)의 색상이 한정되었다. 일반 서민들의 의상에서는 단색이 그 주가 되는데, 가령 흰색과 고등색, 흰색과 검정색이 흔히 사용된 Mi-Parti 양식의 색상짝이었다. 이러한 서민들의 색상 역시 '왕에 대한 혹은, 그 왕권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질서에 대한 복종, 봉사 그리고 헌신'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Ibid, p.12) 그런데 이 시대에 나타난, 또 다른 의미로서의 Mi-Parti 양식이 있다.
일반의상으로 쓰여진 것이든, 무대의상으로 쓰여진 것이든 간에, 귀족이나 군주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의미로 사용한 의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서민복이나 하층계급의 의상과 비교해 볼 때 그 색상면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빛이 나는 밝은 천을 써서 만든 Mi-Parti이다.
그에 사용되는 색상은 위에서와 같이 두 색이었던 경우도 있으나 그 이상의 색이 한 의상에 쓰여지기도 하였고, 형태면으로는 단순히 오른쪽-왼쪽의 색상 대비만을 활용한 것은 물론, 줄무늬나 바둑판의 무늬를 활용한(Idem.), 말하자면 원래의 Mi-Parti를 두드러지게 변화시킨 형태의 의상도 출현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 양식이 최초로 일반의상에 활용된 시기에는 단지 색상 대비 효과라는 기능만을 고려하여 서로 다른 천을 좌·우로 단순하게 재단하였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일반복식이 그 이전의 의상형태에 비해 크게 달라지면서부터 Mi-Parti는 외형적인 사치를 표현하는 중요한 의상양식중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즉, 변화된 Mi-Parti 양식은 장식적인 효과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의상 패턴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래서, 값비싼 털 종류의 의복과 이 양식이 한 의상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고, 모자 장식에도 이 양식이 도입되어 화려한 의상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게 된다.
Mi-Parti의 의상에서 볼 수 있는 이 두 가지 기능 즉, 색상의 각각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시각화하여 권력계급과 특권층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착용하였다는 점과, 의상에서의 장식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는 점은 Commedia dell'arte의 무대의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Commedia dell'arte극의 무대의상에도 이 Mi-Parti 양식이 다양하게 쓰여진다.(Ibid, pp.3∼4. 무대의상의 색상기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Commedia dell'arte극의 의상의 색상기능을 연구하는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점이라 하겠다.) 이 극이 우선 희극이었다는 점, 그 내용에 상류사회의 풍자가 풍부하게 들어있었다는 점, 그리고 배우의 연기가 다소 과장되고 익살스러웠던 점 등이 이 의상양식의 특성과 잘 어울려졌다.
다시 말해서 유형적인 개념이 극의 모든면에서 드러나 있는 Commedia dell'arte에서 Mi-Parti양식은 그 극이 갖고 있는 해학을 색상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유용한 보조도구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 극의 무대의상의 색상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의상은 바로 Harlekin의 Mi-Parti이다.
이것은 Commedia dell'arte극의 초기 형태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번쩍이는 직물을 사용하여 문지방을 연상케 하는 형태의 색상대비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Mi-Parti 양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바로 Harlekin의 의상이다.
의상사의 측면에서 볼 때 Mi-Parti 양식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동일한 색상의 계열들을 사용한 의상이 주를 이루었고, 흑 서로 다른 색상을 한 의상 안에 표현하려 할 때에도 의상에 수를 넣는다든지 하던 것이 고작이었으나, 이 양식이 널리 쓰이고부터는 그것의 영향으로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가미하여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의상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이 다양한 색의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Commedia dell'arte극의 배우들이 모자에서 신발에 이르기까지 자극적인 색상을 선택하여 이 극의 주 내용을 이루는 속박된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내용을 시각화하였다고 할 때, 이런 경향에서도 Mi-Parti 양식의 의상과 밀접한 관련성을 이끌어 낼 수 있겠다. 그래서, Dottare의 그로테스크한, 크게 변형된 까운이 법관모와 일치되었다던지, Tartaglia(공무원)가 왕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닭벼슬 같은 초록색에 한편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노란 줄무늬가 들어간 의상을 입어 그의 신분이나 극중 역할을 충분히 나타내었다든지, 혹은 Brighella가 자신의 신분(그는 노예였다.)을 나타내기 위하여 흰 바탕에 파란 줄무늬의 의상을 입었다든지 하는 것들은 바로 의상의 일부로서나마 Mi-Parti의 직접·간접적인 영향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예들이라 하겠다.
모자이크 모양의 다양한 색상을 극의 내용과 성격에 잘 조화시킨 Harlekin의 Mi-Parti와 짝을 이루는, 이 극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전형적인 Mi-Parti는 Rosetta와 Colombina의 의상이다.
여성복에서의 Mi-Parti는 앞서 말한바 대로 이 당시에 그리 흔치 않은 것이었는데, 특히 극중에서 Harlekin과 결혼하는 Rosetta는 그 의상의 색상까지도 Harlekin의 그것에 일치시켰다. 한마디로, Commedia dell'arte에 나타난 Mi-Parti는 주로 신분이 낮은 익살꾼의 의상에 그 정형적인 형태가 사용되었고, 순수한 장식적인 기능이외에도 상류계급을 동경하거나 빈정되는 이중적인 의미로 (그림 13,14 참조) 쓰여져서, Commedia dell'arte극의 역시 이중적인 구조와 잘 어우러졌다고 할 수 있다.
Commedia dell'arte 이후에도 이 Mi-Parti는 무대의상과 일반의상에서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Mi-Parti 양식의 대립된 색상관계는 의복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얼굴의 화장색조, 머리모양, 구두 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색상활용으로 그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이 양식의 색상이 갖고있는 심리적 기능, 명시성이란 기능이 현대에까지도 의상제작에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이런 색상이 지니는 의미작용과 그 색상대립은 한편 현대 회화의 큰 조류를 이루는 입체파에도 영향을 준다.(Veronika Mertens, Mi-Parti 민 Zeichen, Kierdorf-Verlag, 1983, p.248)
현대의상에 흔히 사용되는 줄무늬를 이용한 의상패턴과 잔잔한 점무늬가 들어있는 의상 이외에도, 가벼운 천이나 번쩍이는 천 위에 여러 패턴을 삽입시킨 여름 의상 등이 모두 Mi-Parti로부터 출발하여 변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가수의상이나 축제행사 때의 의상, 카니발 의상, 익살 광대복에는 이 양식이 사용되고 있다.

루이 14세 당시의 남성복과 여성복, 그리고 Commedia dell'arte극의 젊은 연인과 젊은 여자와의 비교, Jean Berain(1637∼1711),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그 시대의 일반의상을 입은 젊은 연인(Younglover)과 여자배우 》Recuil Fossard《의 채색된 목판 Paris, 16세기
(그림 9)

1611∼1656년 왕의 의상으로 초록색바탕에 노란금수를 놓은 의상. 천은 본견실크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였다. Kostume des 17.Jahrhunderts, Nienholdt, p.26, Dresden 역사박물관 소장.

Magdalens Sibylle 여왕의 의상(1659). 노란본견실크로 만든 의상 허리 부분이 강조되어있고, 가는 손의 형태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서, 웃옷 소매는 2겹으로 만들어졌다. 이 의상색에서 비잔틴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초록색으로 수를 넣어 여왕의 권위를 강조했다.
(그림8)

Jakob de Ghyn, 무도회 삽화 16세기 , Eneabico, 여성복 삽화 16세기 , Heinrich Aldegrever, 결혼식의 무용수 삽화 1538.
(그림7)

Mi-Parti 민 Zeichen, Veronika Merteus, p.189. 1449-1539 》Schambart Buch 가면책《 표지그림. Mi-Parti 양식을 도입한 책표지 그림으로 여기 나타나느 sdmltkdtor은 붉은색-노랑색, 빨강-Orange 색, 파랑-노랑, 빨강-흰색

1 Bauer, Dkb. 2 Flemtzen, Nbg. 3 Kem, Dkb. 4 Sidelmann 5 Kem,Nbg. 6 Peck, Nbg. 7 Ammon, Nbg. 8 Harmann, Rbg. 9 v.Seefried(2) 10 v.Forster 11 v.Staudt 12 v.Fabrice

방패나 깃발에 들어있는 Mi-Parti 양식. 색이 갖고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각각의 의미 있는 곳에 사용되었다.

(그림 10)

Nurnberg 축제때 등장했던 경주자의 의상. 한 손엔 창을, 그리고 또 한 손엔 불을 끄기 위한 나뭇잎을 들고 있다. 색상은 빨강과 노랑색

당시의 군인의 의상에서 나타나있는 색상으로, 오렌지색과 빨강색으로 되어있다. 이 군인의 출신 도시를 상징하는 방패색도 의상과 조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1)

이 양식이 도입된 최초의 의상양식은 주로 높은 층을 대상으로 한 계급에 영향을 끼침. 한 가사가 Mi-Parti 양식의 의상을 입고 있음. 상·하의의 색상이 다른 일치를 보여줌. 빨강·검정·노랑

군인복에 등장된 Mi-parti 형식으로 의상에 의미 있는 달·별·해 모야으이 무늬를 넣어 장식적인 성격을 더욱 드러내 보이고 있다. 초록과 노랑

어떤 배우가 Mi-Parti 양식을 이용한 의상을 입고 있다. 손에든 지휘봉과 모자·양말 모든 것이 이 양식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 노랑-빨강-초록색에 장식적인 노란색 무늬를 넣었다.

카니발에 등장된 Mi-Parti 의상. 색의 분할과 장식적인 의미로서의 무늬가 두드러진다. 화장도 그에 상응하고 있다.

(그림 12)

1) Pulcinella(1862) 몰리에르 작품에 등장하는 익살꾼. 》Masquesef Buffon《 Maurice Sand로부터

2) 17세기 이탈리아의 인쇄물.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오각형을 이용한 의상.

3) G.F.Miller가 배역한 》Arlecchino《, 동판화

4) 1694년 Arlecchino의 의상. 영국 박물관 소장. C. cofolendi의 책표지 그림.

색의 분할로서 Mi-Parti 양식을 도입한 Commedia dell'arte극의 무대의상은 주로 익살꾼의 의상에서 나타나는데, 마름모꼴과 오각형·삼각형을 이용한 색상의 분할로서 의상에 각각 규칙성 있는 면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림 13)

1) Arlecchino. 이 양식을 도입한 의상으로 얼굴 입체적인 느낌을 위해 Mi-Parti 양식이 도입되어 있다. 노랑-검정

2) 17세기 소설. "Grimmelshausen"의 조인공의 모습에서도 Mi-Parti 양식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주인공 이름은 Simplizissimus로, 프랑스 전쟁을 풍자한 내용이다. 반은 학자풍의 의상을 입고 반쪽은 군인복을 입었다. 뒷 배경에는 한 익살꾼이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3) 14세기 이 의상을 입은 기사. 이 그림에서는, 모자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이 양식이 활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이태리의 시대적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삽화로서, 어떤 대상을 야유할 때 이 스타일을 이용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림 14)



C. 무대의상
Commedia dell ' arte와 같은 시기에 같은 이태리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자라난 eh하나의 연극 형태인 Commedia erudita 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장황하게 기술하는 것은 우리가 기울이고 있는 관심에 비추어 그리 적절한 것이 못 된다. 단지, 우리가 관심을 끄는 - 특히 무대의상이나 공연형태에서의 -성격을 개략적으로 Commedia- del 'arte와 비교하여 그려나갈 것이다.
Commedia erudita는 고대에의 모방과 향수라는 당시 르네상스의 전반적인 관심사를 연극의 영역에서 실현해 낸 것이다. 가령 1513년에 새로 교황에 선출된 레오<Leo> 10세는 아주 장대한 잔치를 열도록 하였는데 그 프로그램중의 하나로 라틴어 원문으로 " 플라우투스 펜놀로(Plautus penulo) "를 상연하도록 지시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어느정도 자세히 살펴볼 터인데 이 공연에 대한 무대의상, 무대장치, 분장등에 대한 이 당시 공연된 어느 다른 작품보다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고 이 작품은 그 당시의 Commedia erudita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참가한 배우는 모든 로마 제국 최고가문의 순수한 피를 이어 받은 자손이었고 순수한 라틴어를 구사하였다.
이 극이 상연되던 바로 그 해에 오직 연극 공연만을 위한 극장이 최초로 로마에 세워져서 그 곳이 이 작품의 무대가 되었다.
이 작품의 관객은 교황과 그의 가족들 고급 성직자들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상은 고대 로마 시대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배우들 모두는 살색바지(Hose)를 입었는데 이는 몸에 꽉 죄도록 되어 있어서 고대 의상에서와 같이 마치 하반신을 벗은 것같이 보이게 하였다. 그 위에 고전적인 스타일의 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신었는데 그것은 소끼(Socci)라 불리웠다. Socci는 skyblue색이었고 리본매듭이 매어져 있었으며 아주 귀한 여러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무대에 등장하는 첫 인물은 시인으로 그는 연극의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서문을 낭송할 매우(reciter of prologue)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순백색의 천으로 만든 아주 헐렁한 고대충의 셔츠이외에도 이 매우(reciter of prologue)는 역시 SocciF을 신고 있었고 하얀 다마스크를 천으로 만든 망토를 걸쳤는데 거기에는 금빛줄이 장식되어 있었고 어깨는 고대풍인 매듭으로 처리 되었다.
이어 등장하는 아고라스토클레스는 머리에 빛나는 금으로 된 화관을 쓰고 있었으며 그는 투명 실크로 만든 카마치아(Camicia)를 입고 나왔다. 이는 여기 저기 검은 무늬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그 소매도 헐렁하면서 우아해 보였고 검은 실크수로 그 끝을 장식하였다.
이 위에 입었던 황금색의 튜닉은 다시 흰 다마스크 천으뢰 덮혀 있었고 그 천의 여기저기를 터서 그 갈라진 틈을 통해 안쪽의 금빛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였다.
Agorastocles가 입었던 망토는 청옥색(터어키 블루)으로 역시 금빛 라인이 들어가 있었고 어깨 부분을 매듭 처리하였으며 이 망토 전체를 뒤로 제쳐서 겉단보다 안감을 더많이 밖으로 내놓아서 그속에 입은 투닉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였다.(그림16)
그의 대모리 시종 밀치오네스는 검정색 실크로 만든 헐렁한 튜닉과 역시 매듭 어깨의 오버 튜닉을 입고 등장하였다.
두 자매 아델파시로와 안테라스틸레는 마치 여왕처럼 위엄있고 화려하게 차려 입었다. 그들은 땅에까지 질질 끌리는 소매와 아주 넓은 슈미즈(Chemise)를 입고 그 위에 까운을 걸친다. 이 까운에는 가슴 부분이 보석으로 빽빽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 아래쪽으로 고래 수염으로 만든 치마 받침살을 걸쳤는데 이는 그들 의상이 갖는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남자 배우들과ㅏ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어깨 부분이 매듭 처리된 화려한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이상의 페놀로(Penulo)의 의상에서 알 수 있듯이 르네상스에서의 고대 의상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깨 부분이 매듭처리된 망토라는 점이다. 그 밖에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 이전에-이 Commedia erudita뿐만 아니라 Commedfa dell 'arte 에서도 마찬가지로 - 무대장치, 분장, 의상을 포함한 무대 디자인의 전 영역은 각기 독립되고 전문화된 무대미술의 형태로 발젼되어 간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Commedia erudita가 궁전이나 교황청의 보호아래 발전한 연극이라 한다면 이와같은 무대미술의 혁신을 앞서서 끌어나간 것은 바로 페라라(Ferrara)의 만투아(Mantua) 궁전이었다.
어쨌든 대중연극(-dell 'arte)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개인연극 즉, 왕이나 귀족, 추기경들만을 위한 보여주기위한 연극(-erudita)이 발달함에 따라 엔지니어의 중요성이 날로 더 해가게 되었고 독립된 직업인으로서의 Stagedesigner의 존재를 그 작업의 결과가 묘사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이 시대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무대의상디자이너로서 프리마띠치오와 비사리같은 이를 들수 있다. 이들이 만든 무대의상은 새로운 예술적 심미안을 제공해 준 것들이 었고 또한 그들은 최초의 무대의상디자이너로 당시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레오10세 때의 무대의상에서의 주된 관심사로 색상보다는 detail 에 있었던 같다.
가령 인물의 의상색보다는 대본가의 지시에 따라 Veridico요정은 여성용 Camicic수가 놓여진 소매달린 Canicie를 입히고 요정은 고대풍(all 'antica)의 소기(Sossi)를 허벅지의 우아한 선을 살리기 위해서 달라붙는 옷을 만들어 각각 착용케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Commedia erudita의 의상에 관한 원칙을 제시해 준 사람은 지랄디 신치오와 레오네 데 쏘미이다. 연극공연에 있어서의 실제기술, 즉 상연의 제반문제에 관한 최초의 저서를 쓴 사람이 지랄디(Giraldi)이고 후계자로서 연극공연의 문제점을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다룬 사람이 쏘미(Sommi)라고 할 때 연극사에 있어서 두 이론가는 중요하다 하겠다. 이 두사람이 제시한 무대의상의 원칙을 차례로 살펴보면 먼저 전자는 극장에서 개개인이 배역이 갖는 개성보다는 드라마 자체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했다.
즉 평민복차림의 배우다 코메디에 잘 어울릴 수 있을지라도 그 배우들이 항상 고상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비극에는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고상한 차림의 의상은 관객에게 찬탄을 불러 일으키고 관객들의 주의를 끌 수 있으며 그들이 연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Giraldi의 생각을 요약해보면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그럴 듯 하여야 (즉, 사실같아 보여야)하고 그래서 줄거리를 명확히하고 관객의 Sympathy를 불러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Sommi는 그의 저작에서 고대극을 무대에 올릴 때 배우들이 입어야 하는 의상의 종류와 형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의상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무대에 등장하는 여러배우들을 서로 잘 구별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고대의 연극무대에는 이 기능을 다양한 색채의 사용으로 잘 발휘하도록 하였다.)
그의 한 예로 무대에 어떤 인물에 달린 네명의 시종을 등장시킨다면 첫시종은 챙없는 모자를, 두 번째 시종은 챙 달린 모자, 세 번째 시종은 매우 다양한 색채의 제복을 마지막 시종에게는 쇠고리 소매가 달린 윗도리를 주어 각각이 자라 구별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 다음으로 이국적인 형태의 의상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것은 연극에 있어서 항상 매력을 끄는 의상양식인데 남·여 관객 모두에게 이국적 취미는 공통적인 감수성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연극에 관객이 늘 보아오던 유형의 인물 뿐 아니라 외국인을 함께 등장시키면 그럼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극적효과가 배가된다는 생각에 접맥되는 의견이다. Giraldi와 Sammi의 의상이론이 어느 정도로 넓은 저변으로까지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고대로마, 그리이스 문화를 추종했댜는점과 비잔틴 문화의 유입으로 시작된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전체 문화적 풍토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들이 예술적 감각으로 무대의 제 영역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폭넓게 그리고 깊이있게 발전시켜 나갔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그 시대에 벌써 어느면으로 보나 연극은 실제생활과 다른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그런 인식에 입각하여 무대에 쓰여질 의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즉 일상복을 입은 배우는 무대위에서 자신이 아닌 인물로 행동하는데 일상의복도 그 행위의 표출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지나간 시대를 상연한다는 입장에서 무대의상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위치나 지위등을 구별해 낼 수 있고 인물의 성격묘사로서 그 시대의 관례를 따라서 한다는 원칙에서 그 시대의 무대의상은 역사적 고증이나 고고학적 정밀성을 토대로 드라마의 목적과 부합하여 배우의 위치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그림 15)
Theatre Costume, IRIS, BROOKE


(그림15)
Visari의 디자인에 의한 무대의상, Florence에서 1589 년에 상연된 intermezzi에 등장하는, 두 여배우의 의 상이다. Habit caghi에 의한 형식이다.
- B·Buontalenti -


" Kostume des. und 17. Jahrhunders " ,
Nien holdt, p .6.
16세기 남성복.
장식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가미된 복장.
소매부분과 하의 무릎부분에 Puff를 주었고 목주변을
중심으로하여
수직으로 드러난 흰색의 블라우스는 강조의 느낌을
주고 있다.
긴 형태의 양말을 첨가하여 역시 신체를 강조하는 효과를
노린, 볼륨을 넣은 남성복, 황토색, 모자와 소매끝부분은
검정색. 긴 양말은 노랑색.


(그림16)

1697년 심홍색의 망토를 입고 있는
귀족. p.82 Mondenschau der
Jahrhuderte, Jacques Wihelm.


제2장 색상기능면에서 본 Commedia dell ' arte 극의 무대의상

Commedia del ' arte극의 무대의상은 마치 아름다운 언어의 표현처럼 다양한다.
1497년 이탈리아의 농사짓는 사람들에 디알로그(Dialog)에는 당시의 무대의상은 시에나(Siena)의 로찌(Rozzi)조합에서 만들었었고 처음에는 특별한 의상에 형식이 없이 극을 진행시켰다는것과 색상에 있어서 그 이전의 형태에 비해 큰 변화가 생겼다는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후 플로랜스의 수태고지 광경이 그려져 있는 한 교회의 벽면에 나타난 후란치아비기오(Franciabigio)의 그림을 통해서 이 극의 전형화된 의상의 형태와 색상을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극의 무대의상은 주로 남자복에서 그 유형화된 형태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것은 긴바지(Beinkleider)와 노동자폭풍의 웃도리(Kittel) 그리고 칼라형식(Kragen)과 모자이트 형식을 이용한 의상등으로서 어디에서나 그 색상이 강하게 쓰여지고 있다.
Commedia dell' arte 극의 무대의상은 색상을 통해 배역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색채가 갖고있는 의미와 기능이 직접적으로 의상에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배우들의 의상은 색의 혼용으로 강한 보색대비를 이루거나 면적대비를 적절히 구사하여, 강렬하게 관객에게 호소되도록 하였다.
색상의 효과는 각기 색이 지니는 의미와 성질에 따라 시간적·상직적·사회적인 가치를 어떻게 표현하였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와함께 의상을 통해 색상의 기능을 발현시키는데에는 현실적인 제한요소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실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여부를 말하는데 신체를 감싸고 잇는 한정된 천의 크기에 색상이 미칠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극에 나타난 의상의 색상에서는 주로, 명암대비·보색대비를 활용하고 있다
Commedia del 'arte 의상의 색이 갖고있는 의미를 결정지었던 중요한 이론적 바탕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던 자연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능으로서의 색상은 미학적인 관점과 종교적인 상징의 의미등에 의해서도 규정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시각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Commedia del arte극에 등장하는 배우는 한 무대당 3명 ∼ 25명이다.
이제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격을 갖고 있는 인물들을 설정하여 그 의상을 살펴보고 자연철학적인 논리를 그 출발점으로 하여 색상의 의미를 의상에 적용시켜 그 기능을 알아 보기로 한다.

1. 배역에 따른 의상의 종류
1)판탈로네(Pantalone de Bisoguos) (그림 17 참조)
Pantalone는 특히 오늘날의 남자의상에 까지 그 이름과 함께 이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Pantalone는 처음 고대 로마시대의 Attelane 연극에 나타났던 인물로서 1565년 Commedia del ' arte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는 늙은 베니스인으로 스스로를 존경받는 인물로 착각하여 항상 찡그린듯한 그러면서도 매우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 출신이나 이름이 등장하는 무대마다 제각기 다르게 설정 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1582년경에 Pantalone라는 이름을 가진 베니스인으로 어느 무대위에서 처음 등록하여 그이후로 전형화된 인물로 Commedia del 'arte에 나타나게 된다.
그는 인생을 돈과 여자를 추구하는데에 바친 인물이며 그것들에 대한 탐욕스럽고 우스꽝스런 정열을 품고 있는 인간상을 그리고 배역이다. 한편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경제력으로 궁핍한 베니스를 구제하여 보겠다는 베니스인으로서의 애향심이 함께하는 말하자면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자신의 계획을 치밀하게 이루어 가려는 추진력도 보여준다. 대개는 여주인공인 Colombina 나 Rosetta등과 함께 등장하는데 그녀의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으로 여주인공의 사랑을 늘 감시한다 초기 Pantalone바지의 색상은 반짝이는 붉은색이었다가 나중에 검정색으로 바뀐다. 그것은 당시 베니스의 상황이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였었던 이태리 전반의 그것과 조금도 다른바가 없었으므로 그런 이태리의 슬픔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그후의 Pantalone 의 의상색은 검정색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일반화된다. 상의는 몸에 꼭 달라붙는 붉은색의 자켙(Wam)이었고 모로 만든 역시 붉은색 두건을 챙이 작은 모자형태로 만들어 올렸다. 폭이 넓은 검졍색 망토는 당시 일반사회의 베니스 상인이 입었던 형식을 그대로 빌고 있다. 이 역시 베니스 출신의 상인이라는 무대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그 망토는 폭이 넓은 조끼형태로 Zimarra라 불리던 것이다. 구두로는 길고 뾰족한 형태의 노란 것을 신고 있었는데 여기에서의 노란색은 그 장식적인 요소와 함께 그의 출신계급을 의미하는 바와 일치하고 있다. 스스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착각과 허세가 그가 착용하였던

name password comment

 

    Commedia dell arte - Article 3 수레무대 2003/08/03 4565
    Commedia dell arte - Article 1 수레무대 2003/08/03 4179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Koi * NGDESIGN.org

Copyright(c) 2001 극단 수레무대 All right reserved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번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2층
Tel. 02-716-2515